[동아광장/박성희]점잖은 논쟁은 없다, 독도 문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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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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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하게 잘 사는 집에 어느 날 이웃이 찾아와 자기 집이라고 우긴다. 점잖은 집주인이라면 “어허, 이 사람이 왜 이래?”라며 대응을 하지 않거나 성질이 급한 주인이라면 말부터 턱 막혀 욕을 해주고 내쫓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이웃이 오래된 문서를 들먹거리며 문제 삼거나 연고권을 주장하며 공동 관리를 주장하고 심지어 자기 자식에게까지 “봐라, 너의 집이다”라고 교육시킨다면…. 이쯤 되면 점잖게 대하거나 화를 내선 곤란하다. 냉정하고 단호하게, 꼼짝 못할 증거로 다스릴 채비를 해야 한다.

엊그제 일본 문부과학성이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한 초등학교 사회교과서 검정을 승인했다. 일본의 다음 세대가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교육을 받게 되었다. 백년대계의 효과는 두고두고 나타날 것이다. 우리는 국사 과목도 선택으로 돌리고 그나마 영어 열풍과 조기 유학, 낮은 출산율로 다음 세대 농사가 염려되는데 일본은 밭 갈고 씨 뿌리는 모양이 봄밭에 농부처럼 부지런하다.

인간은 언제부터 말을 잘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을까. 수사학자들은 그 연원을 기원전 5세기경 남부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시라쿠사에서 벌어진 토지 소유권 소송에서 찾는다. 당시 시라쿠사의 독재자 겔론과 히에로는 용병 군인에게 토지를 나눠주기 위해 대규모의 토지 공유화를 단행했다. 지역 주민의 불만과 봉기가 끊이지 않으면서 뒤를 이은 트라시불루스가 왕권을 박탈당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고대부터 논증의 뿌리는 땅 싸움

소위 민주화 사건 이후, 주민들이 용병에게 빼앗겼던 토지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소송이 봇물 터지듯 나왔다고 한다. 당시에는 로스쿨이나 변호사 같은 제도가 없었기에 사람들은 시민법정에 나가 스스로 땅주인임을 주장해야 했다. 말을 조리 있게 하고 제3자에게 설득력이 있는 증거를 찾아내는 능력이 곧 땅이고 돈이었다. 자연히 고액 스피치 강사가 성업하기 시작했는데 이들이 소피스트이다.

내 땅을, 혹은 내 목숨을 지키기 위해 말하는 훈련을 한 사람은 훗날 아테네의 아고라에서 능력을 발휘하여 오늘날의 민주주의를 탄생시킨다. 그리고 말 많은 사람의 궤변에 질린 소크라테스와 일단의 소피스트가 독립하여 진리를 추구하게 된 결과가 오늘날의 철학이다. 민주주의와 철학이라는 열매에는 땅을 빼앗기고 학정에 시달렸던 밑거름이 있다.

당시 소피스트는 만유인력의 법칙 같은 자연의 법칙을 제외한 모든 상대적인 진리를 세 치 혀로 입증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당시에는 노예를 고문하여 받아낸 자백도 법정에서 인정되었고 과학수사대도 없었으니 청중을 움직이는 말 한마디의 위력을 짐작할 만하다. 변론의 핵심은 자신의 무고함(혹은 자신의 재산권)을 보편적 타인이 인정할 수 있도록 논리를 구성하는 데 있다(로고스). 말하는 사람이 매력적이거나(에토스) 청중의 감성코드를 자극할 수 있다면(파토스)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이런 전통 때문인지 대체로 서양 사람은 논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증거 수집과 설득의 방법을 모색하는 데 열을 올린다. 침묵과 점잖음을 미덕으로 여겨온 동양 사람의 체질과는 맞지 않는다. 외교통상부가 독도 문제를 “어느 국가와도 외교 교섭이나 사법적 해결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불필요한 마찰을 피함으로써 독도가 국제적인 분쟁지역으로 부각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실리 위주의 조용한 외교”를 기본 입장으로 천명한 데는 우리 식의 이런 정서가 깔려 있다. 독도를 분쟁지역화하려는 일본의 술수에 말리지 않으려는 의식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침묵 겸손 분노는 예나 지금이나 결코 논쟁에서 미덕이 될 수 없다. 잠재적인 분쟁 이슈에 대한 정부의 ‘조용한 외교’는 ‘설득하는 외교’로 좀 더 적극성을 갖춰야 할 필요가 있다. 설득의 눈높이는 국제사회의 보편적 시각에 맞춰져야 하고 동원 가능한 모든 역사적 자료와 법적 지식을 활용해야 한다. 모든 설득이 그렇듯 독도 문제도 집요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접근해야 한다. 일회성 행사나 반짝 전략으로는 실효도 없이 분쟁지역 이미지만 고착시킬 우려가 있다. 자라나는 아이에게는 흥분하는 모습보다 지식과 인맥을 동원해 차분하게 제 것을 지켜내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좋다. 가장 좋은 역사 교육은 살아있는 세대로부터 직접 배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궤변 잠재울 치밀한 논리 세워야

독도는 분쟁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우리 땅이다. 그러나 역사가 말해주듯 남의 땅을 내 땅이라 주장하는 일은 기원전부터 있어 왔고 지금도 계속된다. 멀쩡한 내 땅도 필요하면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도 “우리 땅이니까 우리 땅이지”라는 식으로는 곤란하다. 황당한 주장을 치밀한 증거와 이치에 맞는 논쟁으로 잠재워야 한다. 일단 논쟁이 시작되면, 성마르거나 점잖은 사람은 증거를 갖고 조리 있게 말하는 사람을 결코 당할 수 없다.

박성희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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