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기 한일 역사공동연구위원회는 최종보고서에서 왜(倭)가 가야에 군대를 파견해 정치기관인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를 세웠다는 설(說)이 사실이 아니라는 데 의견 접근을 보았다. 임나일본부는 일본 학계에서도 이미 부정되기 시작해 일본 세력이 가야에 연락장소 같은 것을 두었다는 주장으로 바뀌고 있다. 일제는 한국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임나일본부설을 조작해냈다. 역사를 자국 우월주의에 따라 기술하는 사관(史觀)의 기저에는 제국주의시대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인접국의 역사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 우월이나 시혜가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한다는 것이 세계사의 공통된 경험칙이다.
고대사와 달리 한일 근대사는 시각이 너무 달라 단기간에 의미 있는 결론을 내기가 어렵다. 중일(中日) 역사공동위원회가 진전을 보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한 일본 측 위원은 “고종(高宗)은 을사늑약을 반대하지 않았고 오히려 조약의 주체로서 반대운동을 탄압했다”는 억지 주장을 폈다고 한국 측 위원이 전한다. 한일 역사 공동연구의 앞길이 여전히 험로(險路)임을 느낄 수 있다. 독도 영유권, 일본군 위안부, 한일강제병합의 불법성 문제 등은 제2기 공동위 논의 대상도 되지 못했다.
올해는 일본의 한국 강제병합 100년이 되는 해다. 일본이 무력을 배경으로 한국 전체 민중의 의사에 반(反)하는 병합을 강제했음은 숨길 수 없는 사실(史實)이다. 이는 일본 일부 교과서에도 반영되기 시작했다. 제3기 위원회가 구성되면 이 문제에 관해 의미 있는 의견 접근을 보아야 할 것이다.
역사 공동연구가 하루 이틀에 서로 만족할 수 있는 가시적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 세계의 많은 인접국 사이에는 전쟁의 아픈 상처가 있어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합의를 쉽게 이루지 못하는 사례가 더 많이 있다. 오카다 가쓰야 일본 외상은 “한중일 공동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것이 이상(理想)이지만 거기까지 이르기 위한 첫걸음으로 공동연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일본에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 후 한중일 과거사에 대한 인식이 다소 유연해진 것은 반가운 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이웃나라에 해를 끼친 독일도 프랑스 폴란드와 역사 공동연구를 하며 화해를 위한 발판을 만들어가고 있다.
한일 간에도 양심 있는 학자들이 열린 사고로 의견을 나누다 보면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좁힐 수 있을 것이다. 한일 과거사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장기적인 안목과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