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에서 우리 선수단이 이룬 결실은 겨우내 지속된 한기와 금융위기의 긴장감을 금세 녹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쇼트트랙과 피겨,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우리는 기대 밖의 선전을 하며 빙상강국의 대열에 들어섰다. 특히 G세대로 불리는 이상화 모태범 이승훈의 투혼과 집념은 감동적이고 드라마틱하다. 그들 앞에 세계의 벽은 결코 높지 않았으며 깨지지 않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았다.
신세대 영웅들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빙판 위에서는 언제나 당당했고 경쟁자와 관객에 주눅 들지 않았다. 발바닥에 굳은살이 박일 정도로 혹독한 훈련은 받았지만 무모한 헝그리 정신에 의존하지 않았으며, 자신과의 싸움은 외롭고 힘들었지만 시상대에서 눈물보다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국민을 감동시킨 어린 영웅들의 자신감과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가. 이면에는 경험 많은 지도자의 1인자 전략, 훈련에만 몰입할 수 있는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 기본기에 기술을 접목시키는 스포츠의 과학화가 숨겨져 있다.
사실 선택과 집중은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극복하면서 우리 기업의 최대 화두였다. 제한된 자원을 집중시켜 최고의 효율과 최대의 성과를 거둔다는 전략이 겨울올림픽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스피드스케이팅 남녀 500m 동시 석권과 1만 m 정상 등극은 종목별 전문화를 통해 1인자를 키우겠다는 지도자의 전략이 주효한 결과다. 1980년대 전자산업에 대한 투자가 오늘날의 디지털산업을 꽃피웠듯이 정상 문턱에서 메달의 아쉬움을 접어야 했던 선배들의 열정과 경험은 후배들에게 투영되어 못 다한 꿈을 실현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성공 요소 중 교육과 훈련은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의 경영사상가 맬컴 글래드웰은 ‘아웃라이어(Outliers·평균치에서 크게 벗어난 것)’에서 “개인은 결국 사회라는 문화적 테두리 안에서 성공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저자는 캐나다 하키대표팀 선수 중 유독 1∼3월생이 많은 것은 특정 날짜를 기준으로 선발하는 시스템 때문이지 그들의 역량이 원래 뛰어나서가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남보다 먼저 시작한 선수는 훌륭한 코치, 뛰어난 동료, 강도 높은 연습 등 이득을 볼 기회가 많으며 이 같은 누적적 이득이 실제 개인 역량에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결국 성공은 ‘집중적 교육과 훈련’에 비례한다고 강조하였다.
최근 도요타 사태는 스포츠뿐 아니라 경영에서도 기본을 챙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우고 있다. 지난해 도요타 위기 시 부임한 도요다 아키오 사장은 ‘기본으로 돌아가라(Back to the basic)’고 외치며 품질에 기초한 내실경영을 다짐하였지만 또다시 위기를 초래하고 말았다.
과도한 성장욕구와 원가절감을 이번 위기의 원인 중 하나로 꼽지만 정작 내부에서는 진정한 도요타생산시스템(TPS)을 소홀히 했다는 자성이 일고 있다. 품질 문제로 위기를 초래했지만 탈출구도 품질 우선주의 정책에서 찾으려는 노력이 한창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도 세계 각국의 많은 선수가 금메달에 도전했지만 최고의 영광은 일부 선수에게만 돌아갔다. 탁월한 전략과 과학적 훈련, 탄탄한 기본기가 시스템적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정상은 언제나 새로운 영웅의 몫이다.
우리 기업도 품질에 기초한 핵심역량과 뛰어난 원천기술, 전략적 사고로 무장하지 않으면 세계 일류 기업의 꿈은 멀어져 갈 것이다. “정상은 올라갈 수 있지만 오래 머물 수 없다”는 버나드 쇼의 혜안을 스포츠 선수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되새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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