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최막중]스노셜리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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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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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에는 유난히 눈이 많았다. 설 전에도 눈발이 계속 이어졌고 영동 지방은 폭설로 귀성이 힘들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설 연휴 첫날 국내 신문에 보도된 워싱턴포스트의 ‘스노셜리즘(snowcialism)’이란 기사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미국 동부지역의 기록적인 폭설사태에 처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눈을 치워 이웃을 도와준 공동체 정신을 눈(snow)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소셜리즘(socialism)을 합성해 신조어로 표현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의 기사는 두 가지 관점에서 읽어볼 수 있다. 차가운 이성으로 분석해 보면 분명 이 기사는 폭설사태에 따른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시민들의 공동체 정신은 물론이고 폭설로 집에 고립되어 시청률이 높았던 슈퍼볼의 독점 중계방송사도 승자이다. 반면 교통당국과 전력회사는 패자로 분류되었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경제학의 기초 개념처럼 무릇 모든 일에는 득과 실이 존재한다는 평범한 사실을 일깨워 주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이 기사가 따뜻한 감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초유의 도시기능 마비 사태에서도 애써 승자를 부각하려고 했던 긍정적인 사고와 여유로움에 있다. 우리는 어느새 눈이 오면 출퇴근길 교통대란을 걱정해야 하는 각박한 도시생활에 길들여졌다. 그렇지만 눈이 오면 아이가 눈사람을 만들며 뛰어 놀고, 연인이 추억을 나누고, 동네에서 눈을 치우며 이웃과 인사를 나누는 즐거움도 있다. 눈 많고 추운 겨울도 공동체가 함께 긍정적으로 마음을 나누면 지역사회의 축제가 될 수 있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이 기사에서 읽게 된다.

중국의 하얼빈은 혹독한 겨울로 악명이 높은 곳이다. 그렇지만 이를 오히려 이 지역만의 독특한 장점으로 살린 예가 빙등제 빙설제이다. 겨울철이면 꽁꽁 얼어붙는 쑹화(松花) 강은 세계 최대 규모의 얼음조각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얼음을 무한정 공급하는 자원으로 활용된다. 그리고 매서운 추위는 얼음조각이 오랫동안 녹지 않도록 하는 방패막이 역할을 한다. 그 덕분에 하얼빈의 어둡고 긴 겨울밤은 오히려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겨울축제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일본의 홋카이도 역시 겨울철의 위기를 기회로 승화시킨 좋은 예이다. 삿포로 눈축제는 하얼빈보다 규모가 작다. 그렇지만 하얼빈 빙등제가 하향식의 관(官) 주도형이라고 한다면 삿포로 눈축제는 동네 만들기인 ‘마치즈쿠리’의 일환으로 지역사회 주민과 민간이 주도하는 상향식 축제라는 점에서 차별적인 장점이 있다. 그래서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와 눈 장난을 하고 썰매를 타게 하는 등의 프로그램이 주요 행사로 자리 잡았다. 그야말로 관광객에게 보여주기에 앞서 지역주민이 스스로 즐기는 축제로서 눈 많고 추운 홋카이도의 겨울을 공동체가 함께 극복하려는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몇 년 전 중국의 산골에서 폭설로 길에서 밤을 지새운 적이 있다. 고속도로가 봉쇄되어 지방도에서 차가 엉키면서 얼어붙은 눈길에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역시 한국 사람답게 제설작업이 늦어지는 점을 따지면서 불평을 했다. 그러나 곧 밤이 되고 길가에 행렬을 이룬 차량의 승객들이 잠을 청하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이 어두운 밤중에 그나마 다른 차량과 함께 있어 안심할 수 있다고…. 그리고 옆자리에 다른 사람이 함께 있어 체온으로 온기를 서로 나눌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그러면서 겨울 밤하늘을 뒤덮은 수많은 별을 세면서 잠을 청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별을 세어볼 수 있을까라는 자문(自問)과 함께.

최막중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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