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송진흡]장차관들의 청주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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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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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전 10시 반경 충북도청에 ‘거물’들이 나타났다.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 이만의 환경부 장관,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등 국무회의 아니고는 한꺼번에 보기 힘든 인사들이었다. 임채민 지식경제부 제1차관과 최장현 국토해양부 제2차관도 함께 왔다. 이들은 정우택 충북지사를 만나 차를 한잔 마신 뒤 곧장 충북도청 기자실로 자리를 옮겨 ‘청주-청원 통합과 상생 발전을 위한 담화문’을 발표했다. 청주시와 청원군이 자율적으로 행정구역 통합을 성사시키면 통합에 부정적인 청원군에 각종 혜택을 집중적으로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담화문 발표 후 충북도청 안팎에서는 장차관 5명이 ‘출동’한 것을 두고 의아해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지역 현안을 놓고 장차관들이 직접 내려와 합동 담화문을 발표한 것이 극히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우선 정부가 청주-청원권 통합을 밀어붙이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당초 생활권이 같아 가장 먼저 통합을 이룰 것으로 봤던 청주-청원권이 청원군의회의 반대로 성과가 나오지 않자 정부가 ‘통합특별법’ 제정을 위한 ‘명분 쌓기’ 차원에서 장차관들을 동원했다는 것. 청원군의회에 정부로서는 할 만큼 했으니까 특별법 제정을 하더라도 더는 다른 소리를 하지 말라는 ‘경고’를 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행안부가 청주-청원권과 함께 통합 의견서를 제출하라고 요청한 수원-화성-오산권에 대해서는 별다른 액션을 취하지 않은 것을 보면 특별한 사연이 있을 것으로 보는 사람도 많다. 일각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9일 충북도 업무보고를 받기 위해 청주를 방문하는 것에 앞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장차관들의 ‘강박관념’이 작용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최고경영자(CEO) 출신으로 성과를 중시하는 이 대통령의 성향에 맞추기 위해 장차관들이 급히 움직였다는 분석이다.

세종시 수정 논란과 결부하는 해석도 있다. 이 대통령이 조만간 세종시 예정지를 방문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장차관들이 세종시 간접 영향권인 충북 지역 여론을 우호적으로 만들기 위해 사전 정지작업을 했다는 것. ‘정부가 충북에 애정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 지방선거 표를 얻는 것과 함께 정책 현안인 행정구역 통합도 이루겠다는 ‘일석이조(一石二鳥)’ 전략이라는 얘기다.

청주-청원권 통합은 기득권을 가진 일부 정치인을 제외하고는 해당 지역 주민 대다수가 찬성하는 사안이다. 그만큼 정부가 명분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가 무리하게 통합을 추진하지 않아도 대세가 될 수 있다. 행정 전문가들은 “차라리 이번에 통합이 안 되면 방사성폐기물처리장을 경북 경주에 빼앗겨 각종 지원을 받지 못한 전북 부안처럼 후회할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향후 다른 국책사업을 추진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보인 통합 행보는 정치적인 복선을 깔고 있다는 ‘설왕설래(說往說來)’를 남기면서 지역 기득권층이 역공할 여지를 남긴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실제로 청원에서는 최근 들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바람에 오히려 역풍을 맞는 것 아니냐는 ‘과유불급(過猶不及)론’까지 나온다.

행정구역 통합도 일종의 정치 행위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범위는 주인공인 해당 지역 주민들이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국한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현 정부가 “행정수도 이전으로 재미 좀 봤다”던 노무현 정부와 다를 게 없다.

송진흡 사회부 차장 jinh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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