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특허, 소비국에서 수출국으로 간다

  • 동아일보

미국 정보기술(IT)업체 애플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특허기술 사용료(로열티)를 내기로 했다. 어제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애플은 스마트폰인 아이폰을 만들면서 ETRI의 특허 기술을 무단으로 사용한 사실을 시인하고 아이폰의 매출에 비례해 로열티를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ETRI는 미국 구글의 휴대전화 넥서스원을 생산하는 대만 HTC로부터도 로열티를 받았다. ‘세계 특허전쟁’에서 밀렸던 한국이 ‘특허 강국(强國)’으로 발돋움할 수 있음을 보여준 쾌거다. ETRI가 노키아 모토로라 소니에릭손 등 22개 글로벌 기업을 상대로 진행 중인 최대 1조 원 규모의 특허침해 소송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최근 지적재산권은 부품의 질 못지않게 제조업, 나아가 기업 및 국가 경쟁력의 중요한 변수로 꼽힌다.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이동통신의 원천기술을 보유한 퀄컴은 2007년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휴대전화 제조회사에서 전 세계 매출의 약 35%인 38억7000만 달러(약 4조 원)를 올렸을 정도다. 세계 각국에서 특허권자의 권리를 찾기 위한 소송은 2003년 9445건에서 2007년 1만9537건으로 급증했다. 소송이나 협상을 통해 로열티와 손해배상금을 챙기는 특허관리전문기업(일명 특허괴물)까지 등장했다. 주식과 채권 대신 아이디어와 특허 등 지식자산에 투자해 수익을 올리는 ‘발명자본’이 투자 행태의 중심이 되는 ‘발명 자본주의’가 거론되는 시대다.

한국의 특허출원 건수는 미국 일본 중국에 이어 세계 4위지만 특허로 돈을 벌어들이는 기술무역수지는 2008년 31억4000만 달러 적자였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지적재산권 보호 순위는 57개국 중 33위에 불과하다. 아이디어와 특허를 가진 개인과 중소기업이 합당한 보상을 받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국내 대기업들도 ‘토종 지적재산’의 중요성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고 있다.

지적재산의 권리를 확실히 지키고,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아이디어 뱅크로 활용하는 협력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선진국과 비교할 때 등록 절차가 까다롭다는 지적을 받는 특허 관련 제도도 개선해야 한다. 특허 로열티 강국으로 가기 위해 정부와 기업, 사회 모두가 특허를 비롯한 지적재산권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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