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미국 정치인들이 그런 주장을 하는 이유요? 한국에서도 전면 재협상해야 한다는 국회의원들이 있잖아요. 똑같은 거죠.”
국내 자동차 및 통상 전문가 27명에게 미국 정치권 일각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내용을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에 대해 묻던 중 한 전문가에게서 들은 답이다. 대다수 전문가는 자동차 분야에서 한미 FTA 협상 결과가 미국 측에 불리하게 돼 있다는 미국 상하원 의원 10여 명의 주장에 대해 “각론도, 근거도 없는 정치적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개방 수준이 높은 것이 명백한데도 미국 의회 의원들이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유권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이거나 미국 행정부로부터 자동차 분야 지원금을 받아내기 위해서라는 설명이었다.
한미 FTA는 양국 정부가 2007년 협정문에 서명했지만 두 나라 모두 의회 동의를 얻지 못해 표류 중이다. 한국에서는 농촌 지역 의원들의 반대가, 미국에서는 자동차공장이 있는 지역 의원들의 반대가 심하다. 최근 론 커크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 서한을 보내 한국 자동차 시장 추가 개방을 요구한 미국 상하원 의원들에는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본사가 위치한 미시간 주 출신 의원들이 포함돼 있다. “미국에서 한미 FTA에 반대하는 의원이나 한국에서 반대하는 의원이나 이유는 똑같다”는 말은 그 의원들이 국익보다는 자기 지역구 표심(票心)을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비꼰 표현이다.
정치적 이익을 노린 발언들이라 해도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그들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문제는 한미 FTA에 관한 한 비교적 지역 표심에서 자유로운 다른 의원들이다. 미국에서는 미시간 주 출신 의원 등이 커크 대표에게 서한을 보낸 같은 날 공화당과 민주당 하원 의원 88명이 당적을 초월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한미 FTA 비준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이들은 서한에서 “미국의 국익을 위해 이명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오바마 대통령은 한미 FTA 의회 검토를 위한 준비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한미 FTA 추진을 요구하는 의원들의 행동을 볼 수가 없다. 17대 국회 때부터 대선 후보와 각 정당 대표들이 공식적으로 한미 FTA에 찬성하는데도 한미 FTA에 반대하는 의원들은 목소리를 키우고, 찬성하는 사람들은 쉬쉬하는 이상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한미 FTA에 찬성하는 한국 국회의원들은 무엇이 두려운 걸까. 국익을 위한 용기를 발휘하는 국회의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한국 정치권이 미국과 다른 점이라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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