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문재완]외고와 아리수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10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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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사교육비라는 프레임의 덫에 걸렸다. 대통령 취임 전부터 시작됐다. 2008년 1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영어몰입교육을 들고 나왔다가 슬그머니 후퇴했다. 글로벌 세상에서 영어가 중요하고, 부모 덕에 영어를 쉽게 배울 수 있는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누구나 영어를 잘할 수 있도록 정부가 공교육 개선에 나선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인수위는 영어몰입교육이 사교육비 증가를 부추긴다는 비판 앞에 무릎을 꿇었다. ‘오렌지’가 아니라 ‘어륀지’로 발음해야 미국인이 알아듣는다는 이경숙 위원장의 한마디만 없었더라도 영어교육 논쟁이 좀 더 의미 있게 진행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에는 정두언 국회의원이 난데없이 외국어고등학교 개혁을 외친다. 외고가 사교육의 주범이고, 초중학생의 모든 사교육이 외고로 향한다는 것이다. 과거 정부와 달리 ‘포퓰리즘에 맞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자율과 책임, 분권과 창의, 개방과 경쟁’을 중시하는 정강을 갖고 있는 한나라당이 이런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우리나라에서 교육 논의는 사교육비로 귀결되는 경향이 있다. 사교육비가 늘어난다는 주장 하나로 모든 논쟁은 끝이 난다. 현 정부는 과거 정부가 쳐놓은 사교육비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다. 이 프레임에 들어가면 사교육은 악의 축이다. 공교육 부실의 원인도 사교육에 있는 것처럼 둘러댄다.

사교육 프레임에 갇힌 한국교육

사교육 증가와 공교육 부실의 관계는 냉철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공교육 부실이 사교육 성행에서 초래된 것이 분명할 때만 사교육 억제정책은 정당성을 갖는다. 하지만 1980년 7월 30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교육정상화 및 과열과외 해소방안’이라는 이름으로 과외를 금지한 후 20여 년 동안 사교육이 억제되었는데 아직도 교육정상화를 외치는 것을 보면 사교육을 억제한다고 공교육이 살아나는 것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사교육 성행이 공교육 약화를 가져온다는 논리는 포퓰리즘에 기반한 프레임이다. 여기에 능력 없는 교육자의 핑계가 가세한다.

교육에서 국가역할에 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교육당국이 사교육만 쳐다보고 있는 한 교육발전은 난망이다. 국가는 공교육 강화에 주력하는 것이 옳다. 사교육은 원칙적으로 부모의 영역이다. 헌법재판소는 2000년 4월 과외교습의 금지를 위헌이라고 결정하면서 부모의 자녀에 대한 교육권은 모든 인간이 누리는 불가침의 인권이라고 선언했다. 자식을 잘 키우고자 하는 부모의 교육열은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함부로 제한할 수도 없다.

교육과 비슷한 논쟁이 15년 전 수돗물을 놓고 벌어졌다. 당시 생수를 먹고 싶은 사람이 많았지만 정부는 생수 판매를 금지했다. 생수 시판을 허용하면 돈 있는 사람만 생수를 사먹게 되어 수돗물에 대한 불신이 생긴다는 이유였다. 생수 시판은 대법원이 1994년 3월 생수판매제한고시가 무효라고 선언하면서 가능해졌다. ‘수돗물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은 근본적으로 국민이 수돗물의 질을 믿지 못하는 데서 생긴다고 보아야 할 것이므로 보존음료수(생수)의 국내 판매와 수돗물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고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는 것이 당시 판결내용이다. 수돗물 대신 공교육을, 생수 대신 사교육을 넣어도 같은 결론에 이른다. 최근 서울시가 수돗물 ‘아리수’의 품질을 자랑하는 것을 보면 발상의 전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교육정책은 더 나은 교육을 받고자 하는 학생의 욕심, 더 좋은 교육을 시키고 싶은 부모의 욕심, 더 좋은 학생을 선발하고자 하는 학교의 욕심을 모두 인정하고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생, 부모, 학교가 각각 더 나아지고 싶은 욕심을 갖는 것은 우리 사회가 경쟁을 바탕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국가역할은 경쟁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경쟁에서 도태된 사람도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생활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드는 데 있다. 우리 헌법은 자율과 경쟁을 원칙으로 하면서도 사회적 약자를 따뜻하게 배려하는 국가를 지향한다.

공교육 강화가 해법이다

경쟁은 많을수록 좋다. 경쟁을 대학입시 때까지 미루기 때문에 소위 SKY라는 몇몇 대학이 우월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한번 경쟁의 결과로 평생 쉽게 사는 구조는 개선되어야 한다. 경쟁의 종류를 다양하게 만들고, 경쟁의 단계를 늘리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외고 문제는 외고 때문에 보이는 착시현상에서 벗어날 때, 궁극적으로 사교육비의 프레임에서 벗어날 때 해결할 수 있다. 국가는 모든 국민이 질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공교육 개선에 주력해야 한다.

문재완 객원논설위원·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moonjaewa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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