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영균]이면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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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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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유명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개그맨들이 소속 매니지먼트회사와 불공정한 이면(裏面)계약을 체결했다고 집단으로 폭로했다. 계약기간이 10∼15년이나 되고 계약금은 없다시피 했지만 “거부하면 방송 출연을 시키지 않겠다”는 협박에 어쩔 수 없이 도장을 찍었다고 했다. 무대 위에서 웃고, 뒤에서 우는 연예계의 그늘이 드러난 것이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연예 스타들의 이면계약은 갑과 을이 뚜렷한 불평등 불법 계약이다. 탤런트 장자연 씨를 자살로 몰고 간 것도 이면계약과 무관치 않다.

▷인도적 차원에서 추진돼야 할 남북 간 교류협력 사업에도 이면계약이 끼어든다. 김대중 정부는 2000년 첫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면서 회담 대가로 5억 달러를 북에 지불하기로 이면계약을 했고 실제로 돈을 보냈다. 2007년 남과 북이 이산가족 영상편지 교환사업에 합의했을 때도 북한이 만드는 영상편지 한 편에 1000달러를 주는 이면계약서가 만들어졌다. 일방적인 퍼주기가 아니라 떳떳한 내용이었다면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최근 남북 정상회담 추진설과 관련해 청와대는 “이면계약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기업 노사 간에 맺어지는 이면계약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이라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상당수 공기업의 낙하산 경영인들은 취임에 반대하는 노조에 임금 인상이나 성과급 지급 같은 취임 선물을 약속하는 이면계약을 체결하는 게 관례화됐다. 편법으로 올린 임금은 고스란히 국민 부담이다. 올해 예산에서 27조3000억 원이 공기업에 지원된다. 이 중 상당액수는 공기업 인건비로 쓰인다. 정부는 공기업 개혁을 누차 강조했지만 이면계약을 적발해 무효화한 사례는 아직 없다.

▷월급도 많고 대우도 좋아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금융공기업 노조가 사측에 이면계약을 요구했다. 예금보험공사 노조는 당장 임금 5%를 깎는 대신 현 정부 임기가 끝나면 15% 인상하는 내용의 이면계약서에 공증까지 받자고 했다. 정부의 금융공기업 임금 삭감 정책에 협조하는 것처럼 꾸며 높은 평가를 받으면 성과급까지 챙길 수 있다. 사측이 응하지 않아 불발됐지만 공기업 노사가 국민 세금을 도둑질하는 격이다. 다른 공기업에는 이런 이면계약이 없는지 살펴볼 일이다.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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