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주 칼럼]6자회담은 진짜 토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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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13일 02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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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견(競犬)에는 미끼(lure)인 가짜 토끼를 쓴다. 하운드 레이스(hound race)라고도 불리는 경견은 훈련받은 그레이하운드가 출발박스 6m 정도 앞에 있는 인조(人造) 토끼를 타원형의 트랙을 따라 돌면서 경주하는 경기이다. 그들은 가짜 토끼를 진짜 토끼로 알고 쫓아간다. 최근 중국 원자바오 총리의 방북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회담 결과를 접하면서 하운드 경주의 인조 토끼가 연상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김정일 위원장은 조건부로 6자회담에 나올 수 있다고 언급했고 이러한 발언의 진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사람과 나라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즉 김 위원장이 “조(북)-미 사이의 적대관계는 평화적인 관계로 전환되어야 한다. 조-미 회담 결과를 보고 다자회담을 진행하겠다. 다자회담에는 6자회담도 포함되어 있다”고 언급했다는 것이다.
북-중 수교 60주년을 기념하는 기간에 열린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여러 가지 이득을 챙겼다. 중국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약속 받았고 미국과 양자협상의 가능성을 높였으며 김 위원장 자신의 입지와 위신을 고양시키는 효과를 거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6자회담 복귀라는 지렛대를 활용하여 다른 나라의 관심을 북한의 비핵화, 핵무기 보유와 실험에 대한 제재로부터 6자회담으로 이전시켰다는 점이다.
‘6자회담 복귀’ 北미끼작전 성공
그러나 6자회담이라는 협상 칩(chip)은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여타 참여국이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집착함으로써 거래 가치를 높여준 결과이다. 북한은 핵 활동 재개와 함께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는다고 선언함으로써 6자회담 국가로 하여금 외교력을 북한의 6자회담 복귀에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이제 김 위원장이 6자회담을 언급함으로써 외교적 진전이 있는 듯이 생각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김정일 위원장은 6자회담의 값을 올리는 데 성공했을 뿐 아니라 그에 복귀하는 데도 조건을 붙였다. 양자회담이 성과가 있었느냐 아니냐는 북한이 판단하는 것으로 되어 버렸다. 어떠한 결과가 만족스러운 것이냐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북한이 6자회담 복귀전에 한없이 시간을 끌어도 미국과 중국 등 관련국이 지연 전술에 대응할 수단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또한 북-미 양자회담의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 북한이 미국에 결렬의 책임을 넘기는 구실을 갖게 되었다.
이렇듯 북한이 다른 6자회담 국가로 하여금 가짜 토끼(6자회담)를 쫓도록 하는 데 성공한 마당에 진짜 토끼(비핵화)를 내주는 선택을 할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설혹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더라도 그것이 북핵 문제 해결, 즉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북한이 회담에 돌아오고 합의에 이르더라도 북한은 이행 과정을 잘게 자르고 중요한 조치는 뒤로 미루는 것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기-협상-합의-파기의 악순환적 과정을 차단하려는 것이 한국과 미국이 추구하는 ‘큰 거래(grand bargain 또는 comprehensive package)’일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거래에 북한이 합의할지, 또 합의를 하더라도 이행 과정에서 또 다른 악순환의 고리가 재현되지 않을지 하는 점이다. 2008년 이후 북한의 행태를 보면 핵무기 개발과 관련된 나름대로의 목표와 로드맵이 설정되어 있으며 핵무기 포기는 북한의 옵션에 들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북한의 ‘가짜 토끼’ 게임을 모를 리 없는데 왜 더 단호하게 나가지 않을까? 분명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보유하는 현실을 용납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북한의 비핵화도 원하지만 북한 정권의 존속과 한반도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정책 목표가 될 것이다. 더욱이 지금 단계에서 북한을 몰아붙이는 등 강압적인 정책적 대안은 부적절하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중국으로서는 북한에 대한 자국의 영향력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가능한 한 억제하고, 북한의 내부 사정을 포함한 장기적 상황 변화를 주시할 것으로 보인다.
비핵화 ‘그랜드 바겐’ 긴밀 공조를
이렇듯 북한은 중국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한국에 대해서도 개별 격파식 방법으로 때로는 회유로, 때로는 강경으로, 때로는 위협과 절연 정책으로 진열의 혼란과 분열을 조장하는 것을 기도한다. 이 시점에 한국과 미국 등 6자회담의 나머지 다섯 회담국이 할 수 있는 일은 북한의 비핵화라는 기본 목표에 충실하고 북핵 문제에 있어서 공동 전략을 구상하며 이행에 있어서 긴밀히 공조하는 것이다. 한국은 주변국에 ‘그랜드 바겐’의 필요성을 납득시키는 과정에서 진짜 토끼와 가짜 토끼를 구별하는 혜안을 보여주어야 한다.
한승주 고려대 명예교수·전 외무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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