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권순택]용산 참사와 임진강 참사

  • 입력 2009년 9월 14일 20시 02분


서울 도심에서 생활하는 내게 재개발 갈등은 일상(日常)의 한 부분이 됐다. 출퇴근할 때는 살벌한 구호들로 뒤덮인 천막 옆을 지나가야 한다. “대책 없이 행하는 강제명도 집행은 가족공동체를 말살하는 살인 행위다. 죽을 수는 있어도 물러설 수는 없다.” 점심 때 서울시청 근처에 가면 ‘용산 참사 외면 재개발 강행 오세훈 규탄’이란 현수막을 봐야 한다. 청계천 산책이라도 가면 ‘오세훈 시장은 세운상가를 정치 야욕의 희생물로 삼지 말라’는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온다. 인왕산 길목의 철거 중인 아파트 외벽에 걸려 있는 플래카드를 봤을 때는 그나마 웃음이 났다. “어머나 시장님, 사람이 살고 있어요.”

경찰관과 철거민 6명이 목숨을 잃은 용산 사건이 발생한 지 8개월이 지났다. 철거민들의 시신은 아직도 병원 냉동고에 있다. 곳곳에 널려 있는 재개발 현장의 갈등은 언제 제2의 용산 사건이 벌어질지 모르는 불안을 키우고 있다.

용산 사건을 ‘권력형 참사’로 규정한 민주당이나 일부세력은 아직도 불씨를 살릴 궁리를 하고 있다. 좌파세력은 철거민들의 극렬투쟁에서 비롯된 사건의 현장을 ‘성지(聖地)’처럼 지키며 사람을 끌어 모은다. 하지만 아무런 불법행위도 하지 않은 국민 6명이 북한의 물벼락에 희생된 임진강 참사 현장이나 빈소에는 관심도 없다. 민주당도 당직자와 국회 국토해양위 국방위 위원 정도만 참사 현장이나 빈소에 다녀왔다. 정세균 대표는 “원인 제공 측은 북한이라지만 우리 측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생긴 일이다. 관리 소홀로 인한 인재”라며 정부에 화살을 돌렸다. 같은 국민이 죽었는데 이렇게 차별할 수 있는가.

막대한 개발 이익과 이권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재개발 갈등은 민주당 집권 10년 동안에도 계속됐다. 재개발 방식이나 경찰의 대응이 바뀐 것도 없다. 그런데도 일부 야당과 좌파세력은 ‘용산 참사를 해결하지 않으면 중도서민정책은 거짓’이라며 정부에 모든 책임을 떠넘긴다. 천정배 민주당 의원은 “용산 참사는 그 자체가 반인도적, 야만적 행동”이라며 검찰 청사 앞에서 1인 시위까지 벌였다.

천 의원은 잊고 있을까. 2000년 6월 9일 철거민 7명이 당시 집권당인 새천년민주당 여의도 당사 8층의 총재실을 점거했다. 민주당은 2시간 만에 경찰 특공대를 투입해 이들을 끌어냈다. 그 특공대가 8년여 뒤 용산 사건에도 투입됐다. 2000년 당시 전국철거민연합(전철련)의 구호는 “철거민 생존권 말살하는 김대중 정권 타도”였다. 천 의원은 그때 새천년민주당 수석부총무였다.

노무현 정권 때인 2005년 6월 경찰은 경기 오산 세교택지개발지구 철거민 대책위원장과 전철련 회원 등 26명을 구속했다. 택지개발지구 건물 옥상에 용산 사건 때처럼 ‘골리앗’ 망루를 설치하고 새총으로 골프공을 날리고 화염병을 던져 철거작업 인부가 불에 타 숨지게 한 혐의였다. 철거민들이 구속된 직후에 천 의원은 법무장관에 취임해 그들을 기소하고 재판을 받게 했다. 당시 전철련은 “노무현 정권은 타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용산 사건을 주도한 전철련에 민주당 정권도 타도의 대상이었다. 재개발 갈등은 해법을 찾지 못할 난제가 아니다. 극렬 투쟁 방식 때문에 다른 철거민 단체들조차 외면한 전철련 같은 불법 폭력 세력을 법대로 처리하고 정부와 여야가 머리를 맞댄다면 말이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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