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황금천]6·25 끝난지 언제인데… 맥아더 동상놓고 싸우나

  • 입력 2009년 9월 9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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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후 1시 반경 인천 월미도 앞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중구 자유공원.

6·25전쟁의 전세를 뒤집은 인천상륙작전의 영웅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1880∼1964)을 기념하기 위해 1957년 공원 정상에 건립된 맥아더 동상 앞에서는 관광객들이 모여 사진을 찍고 있었다. 맥아더가 오른손에 망원경을 들고 월미도를 내려다보고 서 있는 5m 높이의 동상 주변 나무그늘에는 노인들이 돗자리를 깔고 앉아 한가롭게 대화를 나눴다.

20여 분 뒤 호각 소리가 들리더니 경찰버스 2대에 나눠 타고 온 경찰들이 동상 앞 광장을 순식간에 에워쌌다. 인천상륙작전 59주년 기념일(15일)을 앞두고 좌파단체가 이날 오후 2시부터 동상 철거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기로 하자 우파단체와의 충돌을 우려한 경찰이 방어벽을 급히 설치한 것.

이날 집회를 주최한 단체는 우리민족연방제 통일추진회의(대표의장 김수남). 이 단체는 2005∼2007년 전국민중연대 등과 함께 맥아더 동상 철거를 요구하며 죽창을 동원한 폭력시위를 주도한 적이 있다. 당시 우파단체도 이에 맞서 집회를 열어 대립하는 바람에 한국 사회는 수년간 극심한 이념공방을 벌이며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이 단체 회원 10여 명은 ‘맥아더 동상 타도 미군추방 자주통일’이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었다. 김수남 대표의장이 마이크를 잡고 “2005년부터 동상 타도투쟁을 했으나 사대주의 종속 신봉자들 때문에 철거하지 못했다”는 기자회견문을 읽자 갑자기 성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이놈들아. 맥아더 장군이 없었으면 대한민국은 적화통일이 됐을 거야. 도대체 어디서 행패를 부리는 거야?” 자신을 6·25전쟁 참전용사라고 밝힌 한 70대 할아버지가 호통을 쳤다. 광장 주변에서 망중한을 즐기던 노인 10여 명도 집회를 비난하며 할아버지를 거들었다. 이어 우파단체인 맥아더동상수호범국민운동연대 소속 회원들도 달려와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경찰이 양측을 갈라놓아 집회는 2시간여 만에 별다른 충돌 없이 끝났다.

하지만 경찰은 이날부터 동상 주변에 경찰력을 배치하고 특별 경계활동에 들어갔다. 인천시재향군인회 등 23개 보수단체가 10일 오후 1시부터 동상 앞 광장에서 ‘맥아더 동상 보존과 국가안보 결의대회’를 열기로 했기 때문이다. 집회가 끝나자 경계활동에 나섰던 한 경찰관이 이마에 흐른 땀방울을 훔치며 말했다. “전쟁이 끝난 지 60년이 다 돼 가는데 한국 사회는 여전히 좌우로 나눠 반목하고 있으니 통일은 아직 멀었나 봅니다.” 언제까지 이런 씁쓸한 풍경이 벌어질지 가슴이 답답했지만 동상 위의 맥아더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월미도 앞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인천에서

황금천 사회부 kc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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