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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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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만한 외화로 많은 추천을 받은 ‘아버지의 깃발’ ‘록키 발보아’ ‘더 퀸’의 감독과 주연배우가 모두 60, 70대 노장인 것이었다. ‘아버지의 깃발’은 올해 일흔일곱이 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영화다. ‘록키 발보아’의 주연 겸 감독인 실베스터 스탤론 또한 올해 환갑을 맞는다. ‘더 퀸’의 여주인공 헬렌 미렌은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고 영국 여왕에게서 작위를 받은 60대 배우다. 감독 스티븐 프리어스도 60대 중반을 훌쩍 넘긴 노장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감독과 배우로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실베스터 스탤론도 한물간 배우로 치부됐지만 이번 ‘록키 발보아’를 통해 불굴의 노익장을 과시한다.
‘더 퀸’은 올해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작품상 여우주연상 각본상 감독상 등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2년 전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아버지의 깃발’과 동시에 찍은 ‘이오시마에서 온 편지’로 올해도 작품상과 감독상 등 4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고 한다.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왕년의 명배우 피터 오툴은 75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주디 덴치는 73세다. 25일 열리는 올해 아카데미영화제는 한마디로 ‘노인들의 잔치’가 될 것 같다.
이에 반해 올해 설 연휴에 개봉했던 한국영화는 20, 30대 배우와 감독들의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세계적 거장으로 인정받는 임권택 감독의 신작 ‘천년학’이 촬영을 마쳤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설 연휴 극장가에서 볼 수 없어 유감스러웠다.
최근의 한국영화는 극장만 젊은이들에게 빼앗긴 것이 아니라 작품마저도 젊은 세대에게 송두리째 빼앗겨 버렸다는 느낌이 든다. 언제부터인가 21세기의 한국문화는 젊은 대중에 의해 점령됐다. 요즘 영화나 TV에서 각광받는 연기자는 거의 모두 생소한 이름과 얼굴뿐이다. 그나마 낯을 익히고 나면 금세 사라져 버린다. 과연 이래도 괜찮을까? 한 번쯤 자문해 볼 만한 일인데, 누구도 별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 같다.
세계에서 가장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속성을 지닌 미국에서조차 원로와 중견과 신진이 두꺼운 영화산업의 층위를 이루고 있다. 젊은 대중 중심으로만 돌아가는 속성을 지닌 한국영화는 과연 앞으로 얼마나 온전할 수 있을까.
우울한 생각으로 신문을 뒤지다가 오랜만에 왕년의 월드스타 강수연의 모습을 발견했다. 왕년의 스크린 월드스타가 TV 드라마를 찍는다는 게 조금 쑥스럽게 느껴졌지만, 그의 소감은 당당하고 건강했다.
“정말 연기 잘하는 할머니 배우가 되고 싶다. 아역배우로 시작해 늙어서까지 평생을 배우로 살아간 한 사람으로 좋은 선례가 됐으면 한다.”
그러고 보니 강수연은 이제 40대에 불과하다. 그는 왕년의 여배우가 아니라 현역 배우다. 한국영화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강수연 같은 우리 사회의 중견 배우가 한국영화의 가장 든든한 자산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자산을 제쳐 두고 끝없이 새로운 얼굴 찾기에만 열중하는 한국영화의 미래는 결코 희망적이지 않다. 묵은 맛이 없는 날것은 흐르는 시간을 버텨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윤택 극작가·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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