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九里市의 도시락

  • 입력 2007년 1월 10일 03시 00분


도시락이 없는 시간/학교 뒷마당에 앉아 하늘을 보고/골마루를 깔고/이를 잡는다/배고픈 것을 잊고, 재미있다//학교가 끝나서/집으로 오는 길에/점을 친다/밥솥에 밥이 있을까//밥솥이 싸늘하면/탁 주저앉으면/부엌도 주저앉는다//밥솥이 따뜻하면/밥을 안 먹어도/배가 부르다(김사빈의 ‘도시락이 없을 때’ 중에서). 시인뿐 아니라 평범한 40, 50대라면 도시락을 싸오지 못해 끼니를 걸렀던 사무치는 소년기의 기억을 갖고 있기 십상이다.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바라보는 시대에 굶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믿기 어렵지만 현실이다. 결식의 이유가 과거보다 다양하긴 하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챙겨 줄 부모가 없어서, 집단급식소를 찾기가 창피해서, 복지상품권(바우처)으로 과자나 음료수를 사버리는 바람에…. 2005년 1월 제주 서귀포시의 ‘부실도시락’ 파문과 함께 정부가 개선대책을 마련한 지 2년이 지났지만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방학 중엔 사정이 더욱 나빠진다.

▷이런 가운데 경기 구리시는 민관(民官)이 힘을 합쳐 결식아동과 독거노인에게 매일 따뜻한 도시락을 제공해 눈길을 끌고 있다. 구리시는 따뜻한 밥을 제공하기 위해 시 예산으로 보온도시락을 구입했다. 새마을부녀회, 라이온스클럽 등 봉사단체들은 매일 오전 돌아가며 구리시 사회복지관 조리실에서 밥과 반찬을 만든다. 구리시 8개동의 교회와 동사무소 자원봉사자들이 보온도시락에 담긴 따뜻한 밥과 반찬을 아이들의 집으로 배달한다.

▷‘구리시 모델’의 가장 큰 특징은 민간부문의 자원과 역량을 활용해 조리와 배달 과정의 인건비를 없앤 것이 특징이다. 절감된 비용으로 질 좋은 도시락을 만들고, 자원봉사자에게는 이웃사랑의 기회를 제공하니 ‘윈-윈’이 따로 없다. 매주 목요일 아내 그리고 6세 아이와 함께 도시락 배달을 하는 시민 이원영(43·구리시 인창동) 씨는 “직장 때문에 시간 내기가 쉽지 않지만 도시락을 받아 들고 좋아하는 아이들 때문에 4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리시 도시락에는 건강한 시민의 힘이 담겨 있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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