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다이스賞수상 故이종욱 WHO총장 부인 가부라키 씨

  • 입력 2006년 11월 14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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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종욱 WHO 사무총장의 부인인 가부라키 레이코 여사가 13일 서울 중구 소피텔앰배서더호텔에서 열린 파라다이스상 수상자 간담회에서 이 사무총장과의 추억을 회상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 이종욱 WHO 사무총장의 부인인 가부라키 레이코 여사가 13일 서울 중구 소피텔앰배서더호텔에서 열린 파라다이스상 수상자 간담회에서 이 사무총장과의 추억을 회상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세 들어 살던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집에서 나왔어요. 하지만 내겐 그가 집이었어요. 그가 떠난 5월에 이미 집을 잃어버린 거죠.”

14일 ‘2006 파라다이스상 특별공로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고(故) 이종욱 전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을 대신해 상을 받기 위해 방한한 부인 가부라키 레이코(61) 씨는 어렵게 남편에 대한 얘기를 털어놨다.

이 총장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마다 그는 아직도 이 총장의 부재(不在)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물을 흘리며 목이 메어 말을 잘 잇지 못했다.

이 총장의 30여 년간의 봉사활동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모습을 묻자 가부라키 씨는 “남편이 바로 내 앞에 있는 것 같아서 얘기를 못 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일본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천주교 신자였던 가부라키 씨는 1971년 처음 한국 땅을 밟고 경기 안양시 나자로마을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며 한국말을 배웠다.

평소 잔병치레가 많았던 가부라키 씨는 의료봉사를 하러 온 이 총장을 만났다. 이 총장이 “당신이 아프면 내가 치료해 줄 테니 걱정 말라”는 말을 듣고 수녀가 되려던 결심을 꺾고 1979년 결혼을 했다.

이 총장은 서울 동작구청장 직인이 찍힌 주민등록증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고 제네바에서도 가부라키 씨가 해 주는 두부김치, 파전, 순두부를 즐겨 먹었다.

가부라키 씨는 “남편은 WHO에서 일하는 한국인 인턴들을 집으로 초대해 외국에서는 먹기 힘든 한국 음식을 대접하는 일을 즐겼다”고 말했다.

이 총장은 성탄절에는 외국을 다닐 때 받았던 귀한 선물을 직원들에게 약간의 돈만 받고 나눠준 뒤 수익금 전액을 러시아에 있는 보육원에 보내곤 했다.

WHO 사무총장 재임 시 여러 건의 수상 제의가 들어 왔지만 이 총장은 “상을 주려면 퇴임한 뒤에 재임 중의 잘잘못을 가려 결정하라”며 한사코 거부했다.

일본인인 가부라키 씨는 “한국과 일본이 축구경기를 할 때는 둘 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을 정도로 긴장감이 감돌았다”며 “하지만 남편은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일본과 한국은 적이 아니라 동지라고 배운 열린 마음의 소유자였다”고 말했다.

이 총장은 아들 충호(28) 씨에게 “존경하는 마음으로 엄마를 도와주고 항상 기쁘게 해 드리라”고 가부라키 씨 모르게 틈틈이 얘기했을 정도로 아내에게도 소홀한 법이 없었다.

현재 가부라키 씨는 5년 전부터 페루의 결핵지원단체 ‘소시오스 엔 살루드’에서 빈민 여성에게 뜨개질과 자수를 가르치며 이들이 만든 뜨개질 제품을 미국 일본으로 수출해 빈곤 탈출을 돕고 있다.

가부라키 씨는 이번에 받는 상금 4000만 원 전액을 페루의 빈민 구제사업에 지원할 예정이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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