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마당]교장공모제

  • 입력 2006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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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교장은 누가 해야 옳은가’라는 문제를 놓고 교육계가 또 뜨겁다. 현재는 25년 이상의 교직 경력자만 교장이 될 수 있는 등 연공서열을 중시하고 있어 이를 바꾸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가 일정 경력 이상의 교사를 대상으로 공개모집에 의한 선발제도(공모제)를 내놓자 교원단체 간에 찬반이 갈리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교육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좋은교사운동 등 4개 단체가 참여하는 지상토론을 통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해 본다.》

▼전문성 무시하는 발상 ‘정치판’ 변질 우려▼

2009년 12월의 어느 학교 풍경. 6개월간 학생들을 뒷전으로 하고, 전 교직원과 학부모, 교원단체와 동문들까지 온갖 연줄들의 야단법석 끝에 수십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40대 초반의 K 교장이 ‘승리’했다.

(장면 1) 학교운영위원장이 교장에게 전화를 한다.

“K 교장님, 공모 때 약속 잊지 않으셨죠? 이번에 ××급식업체에서 우리 캠프에 신경 많이 썼어요. K 교장만 믿겠습니다.”

“아 예, 위원장님! 잘 알겠습니다.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장면 2) K 교장과 ××대학 선배가 교장실에서 만났다.

“K 교장, 이번에 우리 후배 L 선생이 애 많이 썼어. 일등공신이라고. 그 친구 애들 가르치는 건 어떤지 몰라도 골목대장 기질이 있어서 선거판엔 쓸모가 있다고. 부교장 자리 그 친구 앉혀 봐요. 자네도 일하기 편하고, 자네 나이 갓 마흔인데 4년 후에 한번 더 해야 할 거 아냐.”

“예, 그리 하겠습니다. 어차피 저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부교장으로 모실 수도 없으니까요.”

같은 시간, 교무실에선 줄을 잘 선 사람과 잘못 선 사람 간의 의기양양과 눈치, 갈등과 경계가 교차하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가 2014년까지 50%의 학교에 공모제를 도입하겠다니 전국의 4500개 학교에서 4년마다 이와 비슷한 광경이 벌어지지 않을까? 한술 더 떠, 교육혁신위원회에선 교장자격증 및 교감직 폐지를 주장한다. 교직 경력 10년 이상 교사 중에서 ‘학교운영위원회’가 공모해 교장을 뽑자고 한다. 이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출범 당시부터 주창해 온 ‘5년 이상’ 경력자 중에서 ‘교사들’이 교장을 뽑자는 선출보직제를 포장만 바꾼 것이다.

교장자격증은 전문성의 상징이자, 가장 확실한 능력검증 장치이다. 25년, 30년 이상의 교사 및 교감 경험과 연찬을 거쳐야 받을 수 있다. 이를 부정하면서 5년, 10년 경력만으로 교장을 ‘할 수 있다’거나 ‘해야겠다’는 저의는 무엇인가.

전교조도 출범 20년을 바라보는 만큼 이제 조합원들이 교장으로 나갈 때가 됐으므로 이런 방식으로 교단을 장악하려는 의도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중견을 넘어선 조합원들의 승진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돌파구가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행여 혁신위가 전교조의 장단에 놀아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현행 승진제는 60년간 운영 개선돼 왔다. 단점에 대한 진단과 처방도 나온 만큼 고치면 된다. 갈아엎을 일은 아니다.

백복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정책본부장

▼교사 중에 교장 뽑는 ‘선출보직제’ 바람직▼

어느 조사에서 승진 문제 때문에 아이들에게 소홀히 대하는 측면이 있다고 응답한 교사가 86.5%였다고 한다.

점수따기 경쟁에 교사들도 고통받고 있다. 그 정점에 교장 자격증제도가 있다. 의사가 병원장이 되는 데 자격증이 필요 없는데도 유독 교사만 추가로 교장 자격증을 따야 하는가.

전교조의 대안은 학교자치법제화와 교장선출보직제다. 임의기구인 학생회, 학부모회, 교직원회를 법제화하고 학교운영위원회를 민주적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또한 학교 교사 중에서 교장을 선출하고 선출된 교장은 임기가 끝나면 다시 교사로 명예롭게 교육활동을 수행하게 해야 한다.

전교조는 교장선출제만 주장하지 않으며, 올바른 공모제도 가능하다는 유연한 입장이다. 단 △공모의 과정은 1차 교직원회가 결정하여 학운위에서 추인 △교장 권한의 민주적 배분 △기업인 등 외부개방 반대 △교장 자격증제 폐지 등 4대 원칙을 전제로 한 찬성이다. 하지만 최근 논의되고 있는 공모제는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폐해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10명 안팎의 학운위에서 5명 정도만 담합하면 미리 내정한 후보를 교장으로 앉히는 것이 가능하다. 따라서 위원들 간 은밀한 거래도 쉽게 벌어질 것이다. 최종 결정 이전에 교직원회나 교장인사위(학생, 학부모, 교사로 구성)의 안전판이 있어야 한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공모제하에서 교장의 권한은 더욱 강화된다. 교장의 부교장, 초빙교원 인사권이 강화된다. 실제로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을 실시하는 미국과 영국 계통의 교장 권한은 커졌다. 권한이 확대된 교장이 되기 위해 경쟁률이 격화될 것이고 화려한 이력서를 만들기 위해 몰두할 것이다.

게다가 학교 현장에서는 후보자에 대한 정보가 제한적이고, 이력서와 인터뷰로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파악할 수 없다. 학교 교사 중에서 존경받는 선생님들이 교장직을 수행할 때 학교는 아름답고 풍성해진다.

한편 최근 논의되는 교장 공모제도는 교원평가와 한 묶음이다. 열린우리당은 지방선거 교육공약에도 공모제와 교원평가를 공언했다. 교육혁신위원회 안에는 다면평가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면평가는 학생, 학부모 만족도 조사 결과도 승진 점수에 반영하는 교원평가다. 이 같은 교원평가에는 반교육적 요소가 있다. 아이들이 어린 나이부터 친밀한 상대방을 자신의 이익과 목적에 따라 점수를 매긴다는 것 자체가 교육적으로 문제가 많다. 학교에서 교원평가가 일상화된다면 아이들의 인성과 도덕에는 치명적이다.

최정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정책연구국장

▼자율-혁신학교부터 시작 점진 확대해야▼

교원승진제도는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워낙 첨예하고 광범위하다 보니 현행 제도가 능력보다는 연공서열 중심이라는 큰 문제를 안고 있는데도 근원적인 처방을 하지 못하고 있다. 교장의 자격도 교육적 전문성을 중시하던 과거와는 달리 최근 들어 기획력과 리더십을 두루 갖춘 경영자적 자질을 함께 요구받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이러한 관점에서 작년 10월 교원승진제도 개선시안을 마련했다. 개선시안의 기본 방향은 기존 승진제의 근간을 유지하는 전제에서 능력 중심의 승진 체제로 개편해 나가되, 교장으로 진입하는 경로만은 다각화하자는 것이다.

그 방법론에서는 첫째, 근무성적 평정의 객관성을 제고하기 위해 동료 교원 다면평가 요소를 가미하고 40대 초반에도 교장 승진이 가능하도록 경력의 평정 기간 및 점수 비중을 축소했다. 둘째, 초빙교장제의 응모자격과 심사절차를 엄정하게 하고 경영평가를 강화해 책무성을 확보하도록 했다. 셋째, 자율학교 및 혁신학교 등에는 교장 자격을 요구하지 않는 자격특례제도를 일반인에게도 적용하여 점진적으로 교장 진입 문호를 개방(개방형 공모제)해 나간다는 것이다.

최근 교육혁신위원회의 교원정책특위에서 논의되었던 교장공모제는 응모자격을 교원 경력자로 제한하고 있어 교육부가 제시한 개방형 공모제와는 그 내용에서 차이가 있다. 교육부는 올해 9월부터 개방형 교장공모제(교장초빙·공모제)를 4개 학교에서 시범운영할 계획이다. 앞으로 계속 확대해 나갈 특성화 중고교는 물론 공영형 혁신학교 등에는 특히 해당 분야의 전문적 지식과 경영 마인드를 겸비한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이들 학교부터 우선 교장 문호를 개방하고, 그 성과를 평가한 후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교장공모제를 도입하는 것은 승진제도 개선 방안 중 일부에 해당된다. 현행 승진제도 전반을 대수술해야만 능력 중심의 승진 체제를 확립할 수 있다. 그러나 근간이 되는 틀을 바꾸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나아갈 방향은 바로잡되 점진적으로 접근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직단체는 물론 현장 교원들도 지금은 작은 걸음이지만 나아갈 방향만은 제대로 잡힌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데 지혜를 모아 주기 바란다. 그래서 젊고 유능한 교장을 영입하기 위해 도입한 교장중임제가 오히려 교장 연령을 더 높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 같이 개선이 개악이 되는 일이 없기를 소망한다.

강정길 교육인적자원부 교원정책과장

▼일정기간 교직경험 충족 땐 문호개방을▼

교장공모제 논의가 혼란스럽다. 핵심은 ‘공립 일반학교에서 교장 자격증을 요구하지 않는 공모제를 도입할 것인가’에 있다. 현행 승진 체제를 수십 번 고쳤으나 효험이 없으니 ‘자격증을 요구하지 말고, 실질 심사를 통해 적격자를 찾자’는 것이 공모제의 뼈대다. 물론 기존 제도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양자를 경쟁시켜 보자는 주장이다.

혹자는 교장공모제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교장 선출 보직제’로 의심한다. 그러나 두 제도의 유사성은 별로 없다. 공모제는 교장을 교사들이 선출하는 것도 아니고, 교장 권한을 약화시키지도 않는다. 학교가 심사의 중심에 서는 ‘학교 단위’ 공모제가 부담스러우면, 교육청이 관리하는 ‘지역 단위’ 공모제나 기존 승진제도를 선택하면 된다. 또한 제도 선택권이 학부모들에게 있으니 교원(단체), 학연, 지연 갈등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우리의 주장은 아무나 교장을 시키자는 것이 아니다. 교장 자격증 소지 여부가 좋은 교장임을 보장하지 못하니 실질 심사를 통해 적격자를 찾자는 주장이다. 혹자는 변호사, 의사들도 자격증이 있는데, 교장 자격증을 부정하면 교사 자격증도 무너진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모르는 말씀이다. 병원장은 자격증이 없지만 의사들은 자격증이 있다. 법원장, 법무법인 대표는 자격증이 없지만 판사, 변호사들은 자격증이 있다. 따라서 그런 비판은 사회의 성숙한 판단을 폄훼하는 위기 조장 논리에 불과하다.

또한 교장 최소 요건도 복잡할 것 없다. 교원단체들은 일반인이 들어와 밥그릇을 뺏어 갈까 걱정한다. 그러나 교장 직은 교원 복지를 위해 있는 ‘밥그릇’이 아니다. 학교를 이끌 실질적 능력을 가진 분이면 그만이다. 물론 교장의 핵심 역할이 ‘교사들의 교육 활동, 수업 및 생활지도에 대한 컨설팅과 장학업무’에 있기 때문에 일정한 기간(예를 들어 10년 이상) 초중고교 교직 경험은 필요하다. 그 경험이 있다면 누구에게나 기회를 줘야 한다.

공모제가 도입되어 학생과 학부모들이 유익을 누릴 수 있다면 교원단체들은 반대해서는 안 된다. 세상이 좋아지는 대가로 나의 손실을 요구할 때 “아니요”라고 말하는 자세로는 ‘공익을 위한 자기희생’을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없다. 또한 광장에서 통하지 않는 내부 논리로 교원들을 결집해서도 안 된다. 밥그릇은커녕 국민에게 불신받는 자충수이기 때문이다. 그러잖아도 우리 교사들은 지금 충분히 국민에게 욕먹고 있고, 충분히 고립되어 있다.

송인수 좋은교사운동 대표

:교장공모제:

경력 25년 이상 된 교원 중에서 평가나 연수를 통해 요건을 갖춘 사람에게 교장자격증을 주는 현행 제도를 폐지하고 10년 이상의 교직 경력자(교육혁신위 안)나 교사자격증이 없는 외부 인사(교육부 안)도 공모를 통해 교장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교장선출보직제:

학생 교사 학부모 등 학교 구성원들이 교내에서 교장을 ‘선출’하는 제도. 교장은 자격이 아니라 여러 교사가 맡고 있는 ‘보직’의 하나로 선출 교장은 임기가 끝나면 다시 일선 교사로 돌아간다. 전교조가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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