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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6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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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어문계열 학과를 다니면서도 졸업할 때까지 그 언어를 사용하는 국가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기자로서는 언뜻 교육환경이 많이 나아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조카가 부럽게 느껴졌다.
조카의 대학 홈페이지를 살펴봤더니 2004년 전공 이름을 불어불문학에서 ‘프랑스 문화’로 바꿨다고 한다. 그러나 교육과정은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지난달 취재차 방문한 영국의 대학들은 이미 어문계열의 경우 3학년에 1년간 해당 언어 국가에서 공부하도록 교육과정을 짜 놓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이 계열 3학년을 위한 교육과정은 이들 대학에선 찾아볼 수 없었다.
또 어문계열이라고 해도 언어 하나에만 매달리고 있지 않았다. ‘프랑스어와 영화학’ ‘이탈리아어와 경영학’(이상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 ‘프랑스어와 국제학’ ‘독일어와 경영학’(이상 워릭대)이 전공 이름이었다.
언어 하나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이종(異種) 학문의 통합교육으로 사회에서 곧바로 써먹을 수 있는 학문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나 대학들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도 어문계열의 인기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영국 대학입학사정원(UCAS)의 올해 가을학기 대학지원자 집계 결과 순수인문학 계열의 지원자는 크게 줄었다. 취업률을 보면 학생들이 취업에 도움이 되는 전공을 선택하려는 것도 이해가 간다.
일간 더타임스는 2004년 졸업생 중 어문계열의 취업률이 최악이라고 최근 보도했다. 유럽통합으로 대학졸업자들이 국경을 넘어 쉽게 취업할 수 있게 된 상황에서 어문계열 졸업생의 진로가 불확실하다는 설명이었다. 영국 학생도 영어를 아주 잘하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의 대학졸업생과 경쟁해야 하는 형편이다.
영국고등교육통계국(HESA)에 따르면 러시아어 전공 졸업생의 14%는 실업(졸업 후 6개월 이후) 상태였다. 24%는 대학 졸업장이 필요 없는 분야에서 일했다.
이탈리아어나 스페인어 전공자의 40%도 실업 상태이거나 전공이 필요 없는 직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프랑스어와 독일어 전공자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영문학과 졸업생을 제외하면 취직하기 힘든 형편이다. 한국만큼 어문계열 고학력자가 많이 배출되는 나라도 없다. 불문학과와 독문학과의 박사급 인력 적체는 심각하다.
21세기 세계화시대에 언어가 중요하지만 언어만으로는 안 된다. 이런 점에서 ‘취지 벗어난 외고 이젠 바로잡아야-어학영재양성 설립목적 벗어나’란 제목의 지난주 교육인적자원부 국정브리핑은 시대착오적이다. 물론 외고 난립은 문제가 있다.
남봉철 한국외국어대부속외고 교장의 말처럼 외국어 능력을 갖춘 우수한 인재가 다양한 분야를 전공하는 것이 오히려 국가경쟁력에 크게 도움이 된다.
외고가 이러한 노력을 하고 있고 학생들과 학부모들도 이 때문에 외고를 선택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는 다른 고교들이 본받아야 할 일이지 말릴 일은 아니다.
김진경 교육생활부 차장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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