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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5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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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청자의 수신료 거부는 1980년대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 수단이었던 KBS 시청료 거부처럼 ‘운동’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지는 않다. 시민들은 일본 특유의 문화에 따라 ‘자발적’으로 내는 것으로 돼 있던 수신료를 ‘조용히’ 내지 않고 있다.
NHK에 대한 불만은 프로그램에 대한 것과 경영에 대한 것으로서 이 모두가 NHK의 보수성에 기인한 것이다. 우선 프로그램 측면에서 NHK는 노년층의 지지만을 받을 뿐 젊은 층의 관심에서는 멀어져 있다. 보수적인 정치 시스템 및 관료주의와 유착된 NHK 저널리즘은 기껏해야 내부적 갈등만을 쫓을 뿐 권력 자체의 문제는 제기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한 책임급 PD는 일본군 위안부 관련 특집 프로그램이 집권 여당의 압력으로 축소·왜곡되었다고 밝히면서 정치적 외압이 일상화되어 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일본 시청자들이 더욱 화를 내는 것은 문제가 일어났는데도 관료화된 NHK 조직은 내부의 위계구조만 더욱 공고히 할 뿐, 만성화된 문제에 대한 개혁은 차치하고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점일 것이다. PD의 제작비 착복과 기자의 방화 사건에 대해 사장이 공개 사과하는 와중에도 공금 유용과 금품 수수 등 비리는 계속 터져 나왔다. 책임을 진다며 물러난 사장이 바로 다음 날 고문으로 취임한 사실이 알려져 새 사장이 다시 사과를 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NHK의 보수성과 관료성을 지적해 온 미국 학자 엘리스 크로스 씨는 “일본 시청자들이 드디어 이런 일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 놀랍다”고 말한다.
방송 시청자는 소비자와 시민, 두 가지로 구분된다. 소비자로서의 시청자는 마음에 드는 방송이라는 상품을 골라 값을 지불하고 이를 소비하는 것에 그친다. 그러나 시민은 자본과 정부에 독립된 공영방송이라는 조직의 주인으로서 역할한다. 시민은 공영방송이 잘 기능할 수 있도록 충분한 예산과 독립적 운영조직을 확보해 주는 대신, 민영방송이 하지 않는 창의적 프로그램과 신뢰성 있는 보도를 요구한다.
최근 NHK 사태를 두고 한국에서 이뤄지는 논의가 좀 더 건설적이기 위해선 시민의 역할이 함께 이야기되어야 하겠다. 시민은 한국의 공영방송 KBS와 EBS 등이 선정적 프로그램을 제작하려는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운 여건인지 확인해 보아야 한다. 시민은 또한 공영방송에 제대로 실천한 바와 소홀히 한 부분에 대한 자상한 해명, 즉 책무성(accountability)을 요구해야 한다. 끝으로, 시민은 정치적 의도에서 맹목적으로 공영방송을 공격하거나 옹호하는 여러 이해당사자의 목소리에 속지 말고 ‘시민의 입장에서’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판단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강형철 숙명여대 교수·정보방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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