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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5년 1월 24일 1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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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전 확성기를 들고 학생들 앞에 선 자오의 사진 속엔 젊은 날의 원자바오 현 총리가 찍혀 있다. ‘공산당 개혁’ 주장을 거든 보좌역으로서다. 그날로 정치생명이 끝난 자오와는 보좌의 연(緣)도 끝났다. 2003년 총리직에 오른 그는 자오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13년간의 놀라운 성취를 돌아볼 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안정”이라고 답했을 뿐이다.
▷그 ‘안정’ 덕인가. 요즘 중국 젊은이들은 정치에 관심 없다고 BBC방송 인터넷판은 소개한다. 최대 관심은 어떻게 하면 잘 사는가다. “그 시절의 이상주의는 너무 순진했다” “우리 같으면 그렇게 충동적으로 뛰쳐나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대학생도 적지 않다. 언론에 호소하겠다는 대답도 나왔다.
▷혁명은 억압이 극심할 때가 아니라 부푼 기대가 무참히 깨졌을 때 폭발한다. 덩샤오핑은 이를 간파했다. 톈안먼사태 진압 이후 경제개혁의 속도를 높인 것도 이 때문이다. 15, 16년 전만 해도 당에서 어디 살아라, 살지 말아라며 개인을 간섭했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 약간의 자유선거도 있고, 핵심을 안 건드리는 ‘한계’만 지킨다면 언론의 정부비판도 가능하다. 눈부신 경제발전은 말할 것도 없다. 자오의 눈물이 없었어도 중국의 이런 변화가 가능했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역사를 오늘의 잣대로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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