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영언/수레의 교훈

  • 입력 2003년 1월 10일 18시 06분


조선시대 실학자 연암 박지원(燕巖 朴趾源)의 ‘열하일기’는 그가 사신 일행을 따라 청나라를 여행하고 와서 쓴 기행문이다. 그는 이 글에서 중국에서 본 여러 문물을 거론하며 조선도 이제 성리학 같은 관념적 학문을 지양하고 백성의 살림에 보탬이 되는 실용적 학문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대표적으로 든 문물이 바로 수레(車)였다. 수레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결코 나라가 부강해질 수 없으니 하루빨리 많이 만들어 팔도강산에 보급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열하일기’ 중 한 대목을 옮겨 보자. ‘나라의 쓰임 가운데 수레보다 더한 것이 없다. 이에는 융거(戎車) 수차(水車) 포차(砲車) 등 천백가지가 있어 창졸간에 이루 다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타는 수레와 싣는 수레는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니 시급히 연구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다.’ 그는 그러면서 수레가 많아지면 길이 저절로 닦여져 나라의 교통이 원활해지고 한 곳에서만 나는 물산들이 지체되지 않고 골고루 유통되니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했다. 수레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예로 든 ‘바닷가 사람들은 새우나 정어리를 거름으로 밭에 내건만 서울에서는 한 움큼에 한 푼이나 하니 이렇게 귀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라는 표현이 재미있다.

▷실제로 수레는 문명 발달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처음의 원시적인 수레가 점점 변해 인력거 마차 자전거 자동차 기차 전차 등으로 발전을 거듭한 것이다. 이 같은 교통수단의 발달이 씨줄 날줄처럼 빽빽이 짜여진 지금의 도로망을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수레의 사용이 길을 만든다는 연암의 주장은 앞을 내다보는 훌륭하고 실용적인 ‘정책 제안’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수레는 단순히 교통수단으로서의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수레의 원리에 시대와 인생의 철학이 숨어 있는 것이다. 수레바퀴는 양쪽이 똑같아야 제대로 굴러간다. 한 쪽이 기울면 중심을 잃고 쓰러지고 만다. 그리고 수레는 물건이 가득 담겨야 소리없이 잘 구른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속담도 거기에서 나왔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보수든 혁신이든, 나이 든 세대든 젊은 세대든 두 개의 수레바퀴가 균형을 이뤄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또 새로운 정권 담당 세력이 ‘빈 수레’처럼 요란하기보다는 속이 꽉 차 조용하지만 무게있는 존재가 되기를 국민은 기대한다. 광주(光州) 신창동 철기시대 유적에서 기원전 1세기 때 것으로 추정되는 수레 부품이 출토된 것을 보면서 ‘수레의 교훈’을 다시 생각한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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