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10년 육아일기 꼬박꼬박 '슈퍼 엄마' 이금순씨

  • 입력 2001년 8월 27일 18시 51분


《“엄마는 너를 할머니댁에 맡기고 아픈 마음으로 돌아왔어. 벌써 네가 무척이나 보고 싶단다.”(92년 8월)

10년 가까이 초등학생 남매를 위해 육아일기 세 권을 써 온 서울 강동보건소 간호사 이금순(李錦順·38)씨. 이씨는 육아일기를 보여주며 “별 이야기도 없는데…”라며 얼굴을 붉혔다. 매일 또는 며칠에 한번씩 쓴 육아일기에는 아들 이재창군(11·경기 남양주시 진건초등학교 5년)과 같은 학교 2학년생 딸 이마리슬양(8)에 대한 부모로서의 미안함이 가득했다.》

92년부터 육아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도 직장에 다니면서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을 ‘사죄’하기 위해서였다.

“심술이 났는지 엄마가 출근을 못하게 막는구나. 퇴근시간이 되면 난 조금이라도 빨리 너를 보려고 빨리빨리 걷곤 한단다.”(93년 9월 14일)

이씨는 약한 몸으로 맞벌이 생활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슈퍼 맘’이 되기란 쉽지 않았다. 가까이 사는 시부모님께 아이를 맡기고 주말에만 만나는 ‘주말 상봉’이 계속됐다.

아이의 성장과정은 큰 기쁨이었지만 왠지 모를 두려움이기도 했다.

“재창이가 드디어 글씨를 쓰기 시작했어. 이제부터 공부라는 굴레의 시작이구나. 앞으로 힘들겠다.”(93년 11월 18일)

살다보면 ‘아이가 보지 말았어야 했는데…’라고 생각하는 부끄러운 장면도 있기 마련이다. 부부싸움, 고부갈등 등을 목격한 아이들이 혹시 상처를 입었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일기를 썼다.

“마리슬이 엄마 아빠가 싸우는 걸 봐서 너무 속상하다. 넌 아주 마음 편하고 귀하게만 살았으면 좋겠는데….”(96년 6월 28일)

이씨는 성상담전문가, 치료레크리에이션지도자, 정신보건전문간호사 과정 등을 수료해 육아나 아동심리 분야에는 ‘프로’인 셈이지만 ‘자식’에게는 감정이 앞서곤 했다.

“문제집을 안 풀어서 손바닥을 때린 날. 수학문제가 어렵긴 어렵지. 하지만 엄마는 가끔 ‘어렸을 때 부모님이 좀 더 공부 열심히 하라고 채찍질했으면 좋았을 텐데’하고 원망할 때가 있었어. 나는 너에게 힘이 되고 싶은 거란다.”(2000년 12월 28일)

아이를 친구들과 해외연수를 보내지 못했을 때는 “엄마는 가슴이 아파. 하지만 낙심도 하면서 사는 것이 좋은 거란다”라고 적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이씨의 육아일기에는 아들이 받은 연애편지, 아이들과 주고받은 e메일, 사진들도 덧붙여졌다.

“어제는 아빠에게 혼나고 마음 상했지?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더 열심히 분발하면 어떨까?” (2000년 7월 19일)

“엄마, 편지 잘 받았어요. 앞으로 더 열심히 할게요. 사랑해요∼.”

이씨는 육아일기가 ‘현재와 미래를 들여다보는 거울’이라고 말했다.

“스스로를 반성하기도 하고 커 가는 아이들을 상상하면서 혼자 미소짓기도 하지요.”

간호사 경력 17년째인 이씨는 몸이 불편한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장애인 가정을 매일 5∼8가구씩 방문해 돌보는 방문간호사로 일하며 사정이 딱한 가정을 위해 모금활동을 벌이는 등 선행을 펼쳐 지역신문에 소개되기도 했다.

“아들이 군대가기 전 날과 딸이 시집가기 전 날 각각 선물할 예정이에요. 그때까지 아이들이 못 보게 감춰야죠.”

<김현진기자>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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