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박재환/출판사의 책 사재기

  • 입력 2001년 4월 25일 18시 54분


약 5년 전의 일이다. 지금은 폐간되고 없지만 당시의 출판관계 신문에서 책 사재기를 심층취재해 보도한 일이 있었다. 거의 모든 일간지들이 이 내용을 사회면에 보도하면서 이 기사는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베스트셀러 만들기 다시 고개▼

이 일을 다시 거론하는 것은 최근 이런 책 사재기에 관한 말들이 심심찮게 들리기 때문이다. 심지어 출판에 종사하는 일부 사람들은 모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책들 가운데 사재기하지 않는 책들이 없다고 냉소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물론 이 말은 과장된 것이지만 사재기가 최근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왜 이렇게 책 사재기가 재현되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출판사 사정이 극히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팔릴만한 괜찮은 책이 나오면 출판사들은 한 권이라도 더 팔기 위해서 여러 가지 마케팅 방법을 생각해내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확실한 마케팅방법이 있는 경우도 많지 않다.

이 때 출판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 광고다. 광고는 돈만 있으면 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출판사 입장에서 보면, 광고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엄청난 돈을 지불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출판사의 사운이 걸리기도 해 쉽게 결정할 수도 없다. 이에 비해 사재기는 비용도 적게 들고 효과는 엄청나게 크다. 그러니 쉽게 유혹에 넘어간다.

출판인들은 왜 사재기 유혹에 넘어갈까? 그리고 출판사들이 왜 그렇게 경영 압박을 계속해서 받는 것일까?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는 없는 것일까?

첫번째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 국민이 너무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는 가장 많은 책을 읽어야 하는 때임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들에게 책을 읽을 수 없게 만드는 교육제도가 문제이다. 온통 입시에만 얽매여 청소년들이 폭넓은 독서를 할 수 없다. 이에 따른 부작용이 최근 서울대에서 나타났다. 그것은 서울대 입학생 가운데 상당수가 정상적인 대학 수업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폭 넓은 독서만이 깊이 있는 사고를 가능하게 한다.

마지막 문제는 제도적인 것이다. 우리나라 공공도서관과 대학에서 책을 구입하는 비용이 얼마나 되는가 하는 점이다. 오죽하면 시민단체에서 공공도서관 도서구입비 증액 세미나를 개최하고 시민운동을 전개하겠는가. 이러한 시민운동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일종의 비극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이 하루 빨리 개선되어야만 사회 전체가 풍요로워지고, 출판사들의 경영 압박도 어느 정도 개선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사재기를 하는 이유에 대한 충분한 해답은 되지 못한다. 왜나하면 이러한 해답들은 간접적이고 거시적인 것들이기 때문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도덕적인 것에 있다. 출판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책을 만드는 사람이며,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도덕적이어야 한다. 물론 출판도 사업이기 때문에 영리적 목적이 최우선이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출판 종사자들은 도덕적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경영을 투명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책을 판매하는 방법도 정당해야 한다.

몇 달 전에 필자는 한 출판인모임에 나간 일이 있다. 당연히 출판계 동향에 관해 많은 이야기가 오갔고, 그 가운데 모 출판사가 엄청난 경영 압박을 받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출판사가 엄청난 책 사재기를 하고 있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다.

▼규모에 맞고 투명한 경영을▼

그러면서 사람들은 말했다. '그 출판사가 부도를 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이해가 가는 대목도 없지 않았지만 우리 사회가 이 지경까지에 이른 것은 바로 이 '어쩔 수 없지 않느냐'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병폐들 모두를 용인할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을 고치기 위해서는 이런 생각을 버려야 한다.

출판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사재기라는 부도덕한 방법을 통해 책을 팔아야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사재기라는 것을 근본적으로 없애기 위해 규모에 맞는 출판과 투명한 경영을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

박재환(도서출판 이끌리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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