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혜영, 연극<나비의 꿈>으로 컴백

  • 입력 2000년 11월 19일 18시 09분


영화 연극 TV를 넘나드는 연기자이면서 뉴스 쇼의 앵커우먼으로까지 활동했던 배우 이혜영(38). 누군가는 그를 “장미처럼 강렬한 색깔과 향기로 기억되는 배우”라고 말했다.

여기에 96년 프랑스 유학, “아이 아빠를 밝힐 수 없다”면서도 ‘당당하게’ 한 출산, 매스컴 기피 등으로 뿌연 안개꽃의 이미지가 덫칠해졌다.

21일 시작되는 연극 ‘나비의 꿈―나는 꿈에 장주(莊周)가 되었다’로 1년여만에 무대에 복귀하는 그를 연습장인 서울 삼성동 경기고 100주년기념관에서 만났다.

―경기고 출신이 중심인 이 작품에 참여한 이유는.

“일단 극중 ‘꿈’역에 매력을 느꼈다. ‘나이든’ 배우에 대한 선배들의 관심과 애정이 내게 용기를 준 것 같다.”

―꿈은 어떤 역인가.

“장자의 꿈 속에 나오는 아름다운 여인이죠. 꿈과 현실, 사랑과 외로움을 노래하면서 장주를 유혹하죠. ”

그는 갑작스럽게 회의용 큰 탁자가 놓여진 공간이 무대인 것처럼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일까,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일까’라는 대사를 읊조렸다.

“현실과 꿈의 경계가 모호한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처럼 배우로 살아온 나, 그리고 아내와 엄마로 존재하는 ‘지금의 나’ 중 어떤 게 더 진실한가를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딸 하연이를 목욕시키고 손톱을 깍아주면서 같이 놀 때가 더 행복하단 겁니다.”

―당신의 ‘끼’를 생각하면 무대가 더 그리웠던 것 아닌가.

“나도 놀라고, 주변사람도 나한테 놀란다. 한 남성(김명현씨·45)을 사랑했고 아이를 낳고 시댁이 생기고. 30대 초반까지는 내게 아이와 가정같은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사랑의 힘인가요.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그게 되더라구요. 아세요? 지금은 다른 사람이 도와주지만 아이를 24개월간 하루도 빼지 않고 직접 목욕을 시켰어요.”

―매스컴과의 접촉을 꺼리면서 이런저런 소문이 많았는데.

“하연이를 낳기 직전인 지난해 2월 혼인신고를 했다. 그 뒤 애 욕심이 많아 두차례 임신했는데 나이 탓인지 실패했다. 그래도 45세까지는 아이를 하나 더 낳고 싶다. 그동안 연극 두 편에 출연한 것을 빼고는 나의 모든 것을 걸고 ‘가족’에 매달렸다.”

―마흔의 문턱에 선 느낌은 어떤가.

“당연히 슬프지만 2년이나 남았다고 생각한다. 30대 초반까지 게으름과 자만으로 살았다면 지금은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극중 장자의 친구인 혜시의 대사에 이런 게 있죠. ‘오늘 월나라를 떠났는데, 어제 월나라에 도착했다’고. 나는 시간을 그렇게 봅니다(웃음).”

―본격적인 활동은.

“‘나비의 꿈’에 이어 12월에는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서 막달라 마리아로 출연한다. 영화에도 관심은 있지만 영화사에서 요구하는 역할과 내가 하고 싶은 역할에 차이가 있어 출연을 망설이고 있다. 아버지(고 이만희감독)의 ‘만추’같은 작품을 하고 싶은 데…. 이제 작품을 하면 더 잘할 것 같다.”

―‘꿈’의 무대 밖 꿈은 뭔가.

“아직 면사포를 못 썼는데 2년내에 한번 쓰고 싶다. 남편은 부실 채권을 정리하는 금융 계통의 일을 하는 데 그 사람이나 나나 아직 일이 힘들다. 좀 정리되면 결혼식을 올릴 생각입니다.”

▼백남준-황병기-신구등 화려한 스탭 캐스팅▼

‘나비의 꿈’은 장자의 사상을 대담하게 연극으로 접근한 점외에도 화려한 캐스팅으로 눈길을 끈다.

이 작품은 경기고 연극반 출신을 중심으로 91년 탄생한 ‘화동연우회’의 창립 10주년 기념작.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47회 졸업)이 미국에서 무대배경의 일부로 사용될 비디오 아트 작품을 보내왔고, 가야금 명인이자 작곡가인 황병기(51회)가 음악감독을 맡았다. 한국예술종학학교 연극원장 김광림(66회)이 희곡을, 가요 ‘아침이슬’로 유명한 극단 ‘학전’의 김민기(65회)가 기술감독으로 참여했다.

이 작품은 기원전 4세기경 중국 전국시대 인물인 장자의 삶과 사상을 다룬다. 장자와 친구이자 현실참여적인 혜시의 논쟁, 장자와 꿈속에 나타난 여인의 대화 등이 펼쳐진다. 연출자 이항(한양대 의대교수·56회)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장자의 친화적인 세계관은 디지털시대에 더 빛이 난다”고 말했다.

화동연우회 회장인 탤런트 신구(52회)가 장자역을 맡았고 마당극 연출가 임진택(65회)이 도인 홍몽, 이근희(75회)가 장자를 회유하는 언왕으로 등장한다.

고교를 기반으로 한 단체여서 ‘인기’보다는 ‘밥그릇 수’의 법칙이 확실하다. SBS ‘자꾸만 보고 싶네’의 유태웅(87회)이 마을 사람과 검투사 등 단역을 맡았다. 제작진은 동문 지원이 막강하다지만 경제가 어려워져 대형공연을 꾸리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연습장인 100주년 기념관 입구의 비석에는 기증자중 한명인 김우중(52회) 전 대우그룹 회장의 이름이 있었다. 신구는 “김회장이 나와 동기인데…”라고 했다.

21∼25일 평일 8시, 토 7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02―580―1300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