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6명 인사청문회]판결성향-과거직무 분석

  • 입력 2000년 7월 6일 00시 00분


《6, 7일 이틀간 사상 처음 열리는 국회의 대법관 인사청문회에서는 ‘판결로만 말해온’ 법관 4명을 비롯해 검사 변호사 등 6명에 대한 ‘인물 검증’이 진행된다. 대법원이 인사청문회를 의식해 신중한 인선을 했고 국회도 이들이 정치인이 아닌 법조인이라는 점을 고려하고 있어 청문회에서는 재산 등 개인 신상이나 도덕성 문제보다는 과거 판결성향과 수사결과에 초점이 맞추어질 전망이다. 대법관 피지명자 6명에 대한 법조계의 평가와 주요 직무활동 그리고 검증해야 할 내용 등을 정리해본다》

▼전문가가 말하는 청문회▼

대법관 후보 6명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최상위 법해석기구 구성원에 대한 검증의 장이다. 이들에 대한 검증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할지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본다.

▽박원순(朴元淳)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미국의 경우 대법원은 매번 낙태 사형제도 등에 대한 중요한 결정을 통해 미국 사회의 물줄기를 바꿔왔다. 이 때문에 대법관에 대한 상원인준청문회 과정은 수많은 단체와 국민이 참여, 자기 의사를 반영시키는 직접 민주주의의 현장이 되곤 한다. 같은 맥락에서 이번 청문회는 단순히 대법관 후보의 청렴성 혹은 도덕성을 따지기보다는 후보의 철학적인 인식과 그동안의 판결 성향, 그리고 세계관을 알아보는 청문회가 돼야 한다.

▽김종훈(金宗勳)변호사〓최고 법원의 법관으로서 자질이 있는지를 알아봐야 한다. 후보의 법철학과 함께 인권 및 헌법수호의식, 사법민주화 소신이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또 대법관의 업무가 만만치 않은 만큼 법률적 지식과 사건처리능력도 꼼꼼히 봐야 한다. 그러나 위원들이 이같은 점을 충분히 검증할 만큼 사법적 지식이 있는지 우려가 된다. 특히 청문회준비가 부실하다는 느낌을 갖고 있는데 대법관의 임기공백을 감수하고라도 준비를 철저히 했어야 했다. 또 본회의에서 대법관후보에 대한 동의안을 처리할 때 청문회결과를 존중해야 청문회의 의미가 살아난다. 의원들이 표결 직전에 청문회결과 보고서를 건네받는다면 청문회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윤기원(尹琪源)민변사무총장〓현실적으로 과거 재판기록만으로는 후보 본인의 성향과 사법관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 하면 그동안 하급심 판결은 대부분 대법원 판례 안에서 이뤄져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지향적이기보다는 미래지향적 자세로 청문회에 임해야 한다. 또 청문회의 초점을 후보자의 경력이나 재산 등의 문제점을 따지는 데 두기보다는 후보가 어떤 철학을 가졌는지, 사법독립과 사법개혁에 대한 의지는 충분한지, 시대를 이끌어가는 가치관은 가졌는지를 따져본 뒤 후보의 적격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공종식기자>kong@donga.com

▼강신욱▼

80년대 중반 대검 중수부 과장 시절 박종철(朴鍾哲)군 고문치사 축소 은폐 사건 수사를 담당, 항소심에서 경찰 간부들에게 무죄 판결이 나자 수백장의 상고 이유서를 써내며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아 낸 경력이 있다.

그러나 ‘강기훈씨 유서 대필 사건’과 ‘공업용 우지라면 사건’ 수사를 맡았던 게 부담. 우지라면 사건의 경우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강씨 사건은 유죄가 확정됐으나 재야는 아직도 ‘강압 수사’의혹을 제기한다.

법조계에서는 “정치 검찰의 시비가 끊이지 않았던 것을 고려하면 강고검장은 그나마 소신을 지켜 온 검사”라는 평가도 많다. 한 측근은 “강씨 사건 때 그는 ‘기소를 못해도 좋으니 수사 과정의 적법 절차를 철저히 지키라’고 지시했다”고 변호.

△56세 사시9회 경북영주 출생, 경북고 서울대법대, 10억3700만원

△서울지검 2차장, 전주 청주지검장, 서울고검장

△90년대초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진상규명, 89년 삼양식품 공업용 우지라면 사건 수사, 91년 강기훈씨 유서대필사건 수사

▼이규홍▼

회사정리사건의 이론과 실무에 밝아 97년말 이후 국제통화기금(IMF)경제난으로 인해 몰려든 기업들의 회사정리사건을 무난하게 처리.

62년 회사정리법 제정 후 한번도 사용되지 않았던 ‘사정재판’을 활용, 98년 정태수씨 일가가 부실경영의 책임을 지고 회사에 1630억여원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일하면서 해고 및 산업재해 등 노동사건에서 근로자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하는 판결들을 남겼다. 그러나 94년 슬롯머신 비리와 관련돼 1심에서 징역 5년이 선고된 경찰 간부를 집행유예로 석방한 판결을 두고 공직자 비리에 엄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다. 참여연대가 보안사범에 대한 판결을 잘못 인용해 ‘보수’판사로 오해받기도.

△56세 사시8회 충남 논산출생, 대전고 서울대 법대, 6억9500만원

△서울고법 부장, 서울지법 민사수석부장, 제주지법원장

△91년 한보그룹 정태수회장에 대해 관리인이 낸 사정재판 첫 인용, 94년 슬롯머신 사건 천기호 전치안감 항소심 집유 석방

▼손지열▼

음성적 정치자금과 권력 비리사건에 엄하다. 97년 김영삼 전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에게 조세포탈죄를 인정해 징역 3년을 선고했고 한보비리 관련자에게도 대부분 중형을 선고. 98년에는 유흥업소에서 뇌물을 받은 경찰관에게 징역 5년을 선고.

96년 고법 부장시절 고문피해 시민에게 1심에서 인정한 액수보다 1000만원을 더 보탠 손해배상 판결을 내리는 등 국민 기본권 보호에 적극적. 법원행정에도 깊이 관여해 국선변호인제도 확대, 피고인의 검찰 수사기록 열람권 전면 확대, 불구속재판 원칙의 실현 등을 주장했다.

사법개혁안을 마련하는 데 실무를 담당해 사법개혁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으나 재야에선 자신들의 의견을 별로 반영하지 않았다고 불만.

△53세 사시9회 서울출생, 경기고 서울대 법대 7억1600만원

△법원행정처 기조실장, 서울지법 형사수석부장, 법원행정처 차장

△97년 김현철씨에게 조세포탈죄 인정해 징역3년 선고, 93년 사법개혁과 99년 21세기 사법발전계획 주도

▼박재윤▼

99년 3월부터 서울지법 민사수석부장판사를 맡아 내린 일련의 재벌 상대 소액주주 가처분 결정 때문에 시민단체의 표적이 되고 있다.

그는 2월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 사채 발행이 재벌의 편법증여라며 참여연대가 낸 가처분신청을 기각했으나 이 결정은 5월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참여연대는 92, 93년 교도관과 경찰관의 불법행위 의혹에 대해 제기된 재정신청을 기각한 것에 대해서도 ‘민주적 소신 부족’을 이유로 이의를 제기.

그러나 참여연대는 소액주주 소송의 직접 당사자여서 비난의 객관성을 지적하는 이들도 많다. 일선 판사들과 법조인 출신 야당 의원들조차도 “법 원칙에 충실한 이론가로 일찍부터 대법관감으로 지목돼 왔다”고 입을 모았다.

△52세 사시9회 전북부안출생, 전주고 서울대 법대, 3억3500만원

△대법원 수석재판 연구관, 서울고법 부장판사, 서울지법 민사수석부장

△91년 서울대 노조사건 원심파기 무죄선고, 2000년 삼성SDS 신주인수권부 발행무효 가처분 1심 기각

▼이강국▼

97년 사법연수원 25기 수료생 3명이 학생운동 경력을 이유로 검사임용에 탈락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임용거부처분 취소소송을 ‘이유 없다’며 기각해 재야의 비난을 받은 경험이 있다.

94년 수사기관에 의해 위법적으로 수집된 증거에 대해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판결을 내렸고 99년에는 시위참가중 실명한 대학생에 대해 1심을 깨고 국가 배상판결을 내렸다. 99년에는 성폭력특별법 제정 이후 처음으로 딸을 성폭행한 의부를 고소 없이 처벌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노동사건과 관련해서는 96년 노조가입을 고용조건으로 하는 유니언 숍 제도를 채택했더라도 노조에서 탈퇴한 사원을 회사가 해고해야 할 의무는 없다고 판결, 근로자 신분보장에 기여했다.

△55세 사시8회 전북 임실출생, 전주고 서울대 법대, 18억9200만원

△부산고법 부장, 서울고법 수석부장, 대전지법원장

△99년 성폭행 외부 고소없이 처벌가능 판결, 97년 검사임용탈락한 시위전력자 국가에 낸 임용거부처분취소소송 기각

▼배기원▼

대구고법 판사 재직시인 85년 진보적 개척 교회가 관련된 ‘달구벌 교회 이적 표현물 사건’에서 이례적으로 선고유예 결정을 내려 인권 보호에 기여.

당시 검찰과 안기부는 한 경북대 학생이 이적 표현물을 갖고 있다가 검거된 것과 관련, 안기성(安基成·46·현 일산 장함공동체교회)목사를 배후로 몰아 구속 기소했다. 그러나 그는 항소심 판결에서 “증거가 없고 피고인들은 기독교인이지 공산주의자는 아니다”며 안목사 등 관련자 4명을 석방했다. 5공의 서슬이 시퍼렇던 당시로서는 ‘혁명’에 가까운 판결로 평가됐다.

88년 대구에서 변호사 개업을 했으며 97년 시민을 위한 대구변호사회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하는 등 각종 공익 활동을 벌여왔다.

△60세 사시5회 대구출생, 경북고 영남대 법대, 19억3100만원

△대구지법 부장판사, 대구지방변호사회 회장, 대한변협 부회장

△5공시절 '달구벌교회 이적표현물 사건'선고유예 판결, 대구 변호사회 각종 공익활동 주도

<신석호기자>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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