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 부당행위' 손배소 재소자출신 유득형씨 승소

  • 입력 2000년 6월 21일 19시 17분


‘법적 권리는 스스로 찾으려는 사람에게 주어진다.’

교도소내의 오랜 폐습에 맞서 싸운 재소자 출신 유득형(柳得馨·48·사진)씨의 ‘투쟁’은 약자일지라도 법앞에 깨어있기만 하면 소중한 권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씨는 87년 주먹을 휘두른 혐의로 징역 2년과 보호감호 10년을 선고받고 청송교도소에 수감됐다.

그는 92년 보호감호소 교도관들의 부당한 대우에 대한 고소장을 작성하기 위해 교도소장에게 ‘집필허가신청’을 냈으나 거부당했다. 몇번이나 다시 허가신청을 냈지만 연필 한자루 도 얻지 못했다.

면회온 어머니에게 이런 사실을 호소할 수도 없었다. “구타 등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꺼내기가 무섭게 교도관들이 유씨의 입을 틀어막고 면회실 밖으로 끌어내 버렸다”고 그는 주장했다.

교도소 규칙에 저항한다는 이유로 수갑과 사슬로 온몸이 꽁꽁 묶인 채 6개월을 지내야 했다. 독방에 수감되는 징벌도 받았다.

유씨는 죄인이라고 인간의 기본권마저 포기할 수는 없었다. 유씨는 혼자서 법률공부를 시작했다. 어렵게 구한 행정법 형사소송법 등의 책을 외우다시피 파고들었다. 살아나가기만 하면 꼭 법정소송을 통해 권리를 구제받겠다고 다짐했다.

유씨는 95년 가출소한 뒤 96년 다른 혐의로 청송교도소에 재수감됐다가 99년 1월 다시 가출소했다.

이 과정에서 유씨는 법무부장관에 대한 집필허가신청, 징벌무효 확인청구, 헌법소원,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 무려 102건의 소송을 냈거나 내려고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고소광(狂)’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는 다른 재소자 14명의 소송을 대신 처리해주기도 했다.

끝내 법은 유씨를 외면하지 않았다. 대구지법 안동지원 민사2부(재판장 김주현·金柱賢부장판사)는 최근 교도관들의 불법행위로 인해 정신적 피해를 보았다며 유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는 유씨에게 1000만원을 배상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교도관들이 유씨의 집필허가신청을 받고도 이를 교도소장에게 보고하지 않는 등 부당하게 집필권을 침해했고 교도소내의 가혹행위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이유만으로 면회를 중지시킨 것은 접견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6개월간의 징벌도 한계를 넘은 불법행위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교도관들이 가혹행위를 했다는 주장은 증거부족을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씨로서는 ‘절반의 승리’인 셈. 유씨는 19일 “계구사용 때문에 썩어 들어간 팔목 사진 등을 증거자료로 항소심에 대비중”이라고 밝혔다.

<이정은기자>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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