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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4월 27일 18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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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세의 평범한 컴퓨터회사 직장인 이민재씨. 그는 축구에 미친 사람이다. 그의 축구사랑은 아무도 못말린다. 96년 결혼한 그는 오직 프로축구 결승을 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결혼식을 미루는 엽기적(?)인 만행까지 저질렀다. 현재 그가 가장 사랑스러워 하는 직함은 프로축구 수원의 서포터스 ‘그랑블루 회장’. 5천명이 넘는 회원을 자랑하는 '그랑블루'를 이끌고 있는 그의 목표는 전 국민의 서포터스화.
어린시절 그는 MBC에서 방영한 독일 분데스리가에 심취했다.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흑백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아직도 독일 관중들이 불어대던 은은하면서도 힘찬 호른 소리를 잊지 못한다.그를 흥분시킨 건 골이 아닌 스탠드에서 연호하는 관중의 축제. 그를 포함한 ‘386세대 축구광’들은 95년말 PC통신 축구동호회에 온갖 고민거리를 폭발시켰다. 그도 ‘서포터스’탄생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자유와 질서, 힘과 아름다움, 개성과 집단의식을 결합시킨다. 그래서 새로운 ‘광기’를 탄생시켜 순식간에 젊은이들의 혼을 사로잡는다. 응원구호·노래, 블루윙즈 유니폼, 대형 현수막, 조명탄, 깃발, 천 등으로 관중석을 뒤덮는 시각적 응원문화는 메카인 유럽 명문구단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
서포터스 운영에 있어서도 그는 민주적이다. 원정경기 참여경비등 힘든 점도 있지만 구단에서의 무조건적인 지원은 절대 사절한다. 이제 그는 국가대표팀간 A매치 경기는 재미가 별로 없고 자연스럽게 지역을 강조하는 프로축구에 익숙하다고 말한다. 그도 ‘붉은악마’ 결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지만 말이다. 회장직을 맡고 있으면서도 그가 아는 ‘그랑블루’동료 서포터스는 약 1백여명 정도다.
그래서 10개구단 서포터스간에 라이벌 의식도 있지만 동업자 정신이 투철하다. 이날 상대한 안양LG ‘레드치타스’ 우남철회장(29·회사원)과도 친분이 두텁다. 서로 밤이 새도록 한국축구 발전을 위해 논쟁(?)을 벌이는 막역한 사이. 그래서 운동장에서 폭력 사태 등의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서로 힘을 모으고 상대의 승리에 축하의 박수를 보내는 우정을 과시한다.
물론 그에게도 축구장 밖의 ‘삶’은 있다. 그는 가정에 소홀한 점이 늘 미안하다. PC통신 축구동우회 회원으로 만난 아내도 이제는 두딸의 어머니로 변했다. 그는 매주 한차례씩 고달픈 일상의 껍질을 벗어던지고 화려한 축제를 찾아 나선다. 우리 응원문화를 송두리째 바꿔놓은 ‘서포터스’의 주역이 된 것이다.
김진호/동아닷컴 기자 jin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