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亞 연재소설 스타文人 산실…문단 기념비作 잇달아 잉태

  • 입력 2000년 3월 31일 21시 17분


일제하 유일한 민족적 표현기관으로 출범한 동아일보에는 억눌려있던 정치 사회적인 외침만 물밀듯이 몰렸던 것이 아니다. ‘문화주의’의 사시를 구현하는 첫걸음으로 무엇보다 국어를 갈고 다듬자 했던 동아일보의 노력은 문학의 장려로 이어졌고 이는 국내최초의 신춘문예 제도 도입, 연재소설 게재 등으로 구체화됐다. 특히 연재소설란은 베스트셀러 산실이나 다름없었다.

한국문학사에 동아일보가 남긴 베스트셀러 첫 머리에는 춘원 이광수가 우뚝 서 있다.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맡기도 했던 춘원은 32년 4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연재소설 ‘흙’을 써서 농촌계몽운동을 독려했다.

그 뒤를 잇는 것이 동아일보 창사 15주년 기념 소설 공모 당선작인 35년작 ‘상록수’. 저자 심훈(본명 심대섭)은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하다 그만 둔 뒤 영화 ‘장한몽’에서 이수일역을 맡기도 하는 등 전방위 문화예술가로 활동했다(동아일보 80년사 ‘민족과 더불어 80년’ 중). 두 작품은 봉건제와 식민지배의 폐습을 동시에 극복하려했던 당시 ‘브나로드’ 운동 주도세력의 의식과 식민지 농촌의 모습을 압축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당대 풍속의 증언’이라는 신문 연재소설의 역할은 해방 이후에도 지속됐다. 66년 연재 당시 사회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는 68년 연재된 손창섭의 ‘길’과 더불어 이른바 ‘상경(上京)문학’이라는 단어를 낳은 작품. 가난한 고향집을 돕겠다며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일식집 종업원, 다방 레지, 밤의 꽃으로 전전하게 되는 길녀의 삶은 ‘농촌공동체 붕괴’ ‘도시화’같은 건조한 사회학 용어들을 생생하게 육화한 것이었다.

연재소설 사상 최초로 무협소설의 경지를 열어보인 ‘비호(飛虎)’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 언론인이기도 했던 저자 김광주는 ‘비호’ ‘풍운검’ 등의 무협소설과 ‘결혼도박’ 등 사회의식이 깃든 세태소설을 썼으며 그가 현대 한국어로 옮긴 ‘삼국지’ 등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75년부터 3년간 연재된 유현종의 ‘연개소문’은 ‘쿠데타로 집권한 독재자’라는 동일성 때문에 당시 박대통령과 견주어지며 독자들의 인기를 모았던 작품. 저자는 “8권짜리 책 24만질이 월부로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고 회고한다.

70년대 고도 성장신화의 그늘을 보여주는 세필화로는 단연 박완서의 76년작 ‘휘청거리는 오후’가 꼽힌다. 교감출신의 영세기업 사장인 아버지와 허영심많은 어머니 사이의 세 자매. 그 세 자매의 결혼풍속도는 급격히 계층분화되는 한국사회에서 결혼으로 단번에 신분상승하려는 신데렐라 놀음의 허망함을 극명하게 보여주며 독자들을 불러 모았다.

81년 봄 동아일보는 20세기 한국 문단의 기념비적 작품을 잉태해 놓는다. ‘창간 60주년 기념 2000만원 고료 장편소설 공모’ 당선작인 최명희의 ‘혼불’. 한땀한땀 수를 놓듯이 작품을 쓴 최씨는 97년에 이르러 마침내 이 작품의 1부를 마무리해 10권 분량으로 내놓았다. 1930년대 남원 전주 일대를 배경으로 전래 풍속이 촘촘히 고증돼 민속학, 인류학 자료로도 귀중한 자산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한국인의 혼’의 원형이 무엇인가를 되묻는 작품이었다. 17년간 오로지 이 작품 하나의 완성에 몰두한 작가는 “1960년대까지를 잇는 그 후 이야기를 쓰겠다”던 소망을 채 이루지 못하고 집필과정에서 얻은 암 때문에 98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90년대말 동아일보가 게재해 사회적으로 또한번의 파장을 일으킨 작품은 여성작가 전경린의 ‘구름모자 벗기 게임’. 단행본으로는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로 발간된 이 작품은 한 30대 부부의 불륜과 파경을 대담하게 묘사함으로써 붕괴 위기의 가족, 부부의 단절 등을 극 사실로 그려냈다.

동아일보는 20세기 마지막 연재소설로 북한을 방문한 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10년간 옥살이를 하고나온 황석영의 첫 소설 ‘오래된 정원’을 실었다. 90년대말의 소설이 일제히 내향성(內向性)으로 움츠러들었던 것과는 달리 이 작품은 개발독재, 그에 맞선 변혁운동, 90년대 사회주의권의 붕괴 등으로 숨가쁘게 이어져온 격동의 한 시대를 정리하는 한편, ‘인간다운 삶, 분단극복의 과제’를 큰 울림으로 되새기게 했다. 마지막회에서 ‘아직 나에게 할 일이 남아있을까’라는 화두를 던진 이 작품은 곧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정은령기자> ryung@donga.com

▼내가 그글을 쓰던 시절▼

▽이호철

서울 종로3가의 공창과 지상전차가 함께 없어진 것이 68년이니 ‘서울은 만원이다’는 그 직전의 서울 풍경을 묘사한 것이다. 당시에는 저녁 무렵 종로통에 나가면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한 아낙네들과 베트남 파병 전사군인들의 아내 등 먹고살길이 막연해진 여인들이 허옇게 깔렸다. 소설의 주인공 길녀도 그런 여인 중의 하나였으리라. 나는 당시 종로통의 그 풍경이 서울의 세태, 한국의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해서 그 풍경을 그리자고 작심했던 거였다.

▽유현종

‘연개소문’이 인기를 얻었던 것은 아무래도 기존의 역사소설 작법을 현대소설 스타일로 바꿔 인물의 내면묘사등을 박진감있게 끌고 나간데 있지 않나 싶다. 그 결과 역사소설은 나이든 이들이나 읽는 것이라는 통념을 뒤엎고 젊은 독자들이 ‘연개소문’의 절대적인 팬이 됐다. 75년 연재를 시작할 당시 송건호 편집국장이 “연개소문도 독재를 하다 쓰러졌는데 연재가 끝날 때쯤이면 박정권도 혹시…”라고 했는데 소설연재가 끝난 1년 후 거짓말처럼 10·26이 벌어졌으니….

▽박완서

‘마담뚜’라는 말은 ‘휘청거리는 오후’를 통해 생겨난 말이다. 당시만해도 중매쟁이를 뚜쟁이라고 부르던 것을 소설 속에서 내가 고쳐불렀던 것인데 이 천박한 말이 유행어가 돼가는 것을 보며 사회적 책임을 느꼈던 기억이 생생하다. 돌이켜보면 ‘잘 살아보세’로 집약된 70년대의 경제 제일주의, 그것이 가져온 속물화경향의 파탄을 이 작품을 쓰던 무렵 이미 예감하고 있었던 셈이다.

▽최명희

역사자료는 ‘혼불’이 아니라도 도서관에 가면 얼마든지 볼 수 있어요. 중요한 건 역사의 느낌을 복원하는 것입니다. 박제돼 있는 선조들의 삶에 생명을 불어넣어 오늘의 내 삶과 한 탯줄로 잇기 위해서는 어머니 할머니의 목소리를 그대로 ‘혼불’ 안에 되살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97년 인터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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