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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3월 17일 23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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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환(全哲煥)총재를 비롯한 한국은행 전문가 10여명은 한달 전 ‘한국 은행산업의 진로’라는 공저를 냈다. 전총재 등은 우리나라 은행산업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을 ‘정부의 지나친 간여로 은행이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들은 ‘관치금융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선 정부의 인식전환과 함께 정부간여의 제도적 통로인 직접적이고 경쟁제한적인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용근(李容根)금융감독위원장은 최근 “시장기능을 회복시키기 위한 정부의 개입은 관치가 아니다”고 했다. 60조원 안팎의 공적자금을 쏟아붓고도 시장기능 회복에 실패했다고 자인하는 것인가. 국민은행장 선임을 둘러싸고 느닷없이 인선방식에 개입한 것도 시장기능 회복을 위한 것인가. 은행 내부에서 외압 의혹이 제기되는 김상훈(金商勳)금융감독원부원장의 행장 추천은 적어도 시장기능 회복과는 무관하며 더 나아가 시장기능 훼손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정부는 지난달 일부 은행의 수신금리 인상에 제동을 걸어 특판상품 등을 백지화시키더니 이번에는 또 이헌재(李憲宰)재정경제부장관이 나서서 “수신금리를 올리려는 은행경영진이 있다면 백번 잘못된 것”이라고 경고했다. 통상적 영업활동까지 간섭하는 것도 시장기능 회복을 위한 것인가.
그런 가운데 이용근위원장은 ‘은행별로 디지털금융 계획안과 독창적인 금융상품을 만들어 발표할 것’을 요구했다. 지난 1월에 있었던 돈 부시 미국 MIT대 교수의 방한 강연내용이 떠오른다. 그는 “한국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고 있는 구형 경제모델을 아직도 쓰고 있다. 관료주의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다양한 아이디어와 창조적 정신을 기대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정부는 규제와 개입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야 할 일, 예컨대 인터넷금융을 촉진할 수 있는 법 제도의 정비부터 제대로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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