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경택칼럼]정치개혁 안되는 이유?

  • 입력 2000년 2월 11일 20시 21분


선진정치와 후진정치를 구별하는 잣대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투명성이 아닌가 싶다. 정당의 공천이나 정책결정과정이 민주적이면서 투명하다면, 정치자금의 흐름을 유리 파이프를 통해 물이 흐르는 것을 보듯이 명쾌하게 볼 수 있다면 거기에는 부정이니 비리니 하는 것이 끼어들 여지가 없을 것이다.

정치개혁의 목표 역시 그 근본은 우리의 정치판을 투명하게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김대중(金大中·DJ)대통령이 기회있을 때마다 강조하고, 여야 정치권이 2년 가까이 매달려온 정치개혁의 성과는 무엇인가. 여론의 거센 저항에 못이겨 국회의원수를 몇 명 줄이고 비례대표에 여성을 30% 할당토록한 것 등 몇가지 성과는 있다고 하지만 정작 우리 정치를 한 차원 높게 끌어올리는 개혁다운 개혁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투명한 정치 투명한 선거 를 위한 장치들은 하나도 마련된 게 없다. 그러니 이번 선거도 깜깜한 선거 가 될 수밖에 없다. 선거판에 어떤 돈이 얼마나, 어떻게 들어오고 어디에 얼마나 쓰이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런 가운데 어떤 음성적 거래와 부정의 씨앗이 뿌려질지도 알 수 없다. 그리고 이 씨앗이 나중에 어떤 화를 불러올지도 모른다.

▼선거감시 웹 www.opensecrets.org▼

참고로 미국선거를 보자. 우선 지금 각 주별로 예비선거가 한창인 대통령선거의 경우, 각 후보별 선거자금 입출금상황이 매달 미연방 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해 공개된다. 총모금액과 사용액은 물론 기부자(개인 및 기업)별 액수도 발표된다. 선거자금을 감시하는 시민단체인 오픈 시크리트는 인터넷 웹사이트(www.opensecrets.org)에 이같은 내역을 상세하게 올려놓고 있어 누구나 들어가 볼 수 있다. 선거자금이 투명하게 운영되는 것은 상하의원선거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떤가. 국회의원선거가 끝난후 30일이내에 선거운동기간(16일)의 수입지출보고서를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하게 돼있는데 대부분의 후보자들이 법정한도액인 8천수백만원내에서 짜맞춰 보고하는 게 현실이다. 법정한도액내의 돈만 썼다는 보고를 그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더우기 선거자금은 법정선거운동기간에 쓴것보다 그 훨씬 전부터 쓰는 게 문제다. 중앙선관위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선거운동기간중에도 현지 조사를 할 수 있게 하자는 것등 몇가지 정치자금 투명화 방안을 국회에 제시했으나 대부분 거절됐다.

벌써부터 30당 20낙(30억원을 쓰면 당선되고 20억으로는 떨어진다)이라는 말이 나돈다. 이 돈들은 다 어디서 만드나. 순수한 후원금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할테니 아무래도 여기저기 손을 벌리는 과정에서 깨끗하지 못한 돈, 꼬리가 붙은 돈을 받는 수도 있을 것이다.

의원이 되고서도 선거비용부담때문에 '유혹'에 넘어가 검은 돈을 받게되고 '재수없으면' 사직당국의 수사망에 걸린다. 그러나 수억 수십억원을 받고도 '대가성 없는 돈'이라고 강변한다. 설혹 유죄판결을 받았더라도 곧 사면복권돼 다음 선거에 출마한다. 우리나라처럼 공직자의 뇌물수수에 관대하고 사면이 남용되는 나라는 없다. 이번 시민단체의 낙선운동 대상자에 낀 어떤 여권의원은 재판결과 분명히 유죄가 확정된 상태인데도 '무죄'라고 해명한다.

▼몇 점짜리 개혁인가?▼

세계는 지금 뇌물 -정치자금 -공직자윤리에 대해 아주 엄격해지고 있다. 이것이 글로벌스탠다드다. 그러나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다.

김대통령은 자신이 그렇게 외쳐온 정치개혁이 몇점짜리 개혁이 됐다고 생각하는가. 대가성이 있건 없건, 밀실에서 은밀히 돈을 받고, 보스노릇하느라 그 돈을 자기 사람들에게 은밀히 갈라주는 '3金식불투명정치'에 평생 물들어온 구정치인들에게 투명한 정치나 근본적인 개혁을 기대하는 것이 애시당초 무리였는지 모른다.

어경택<논설실장>euh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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