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윤득헌/한국을 떠나고 싶은 이유

  • 입력 1999년 11월 30일 19시 09분


이민이란 말은 우리에게 다양한 모습으로 비친다. 우선 이민과 관련된 단어만 꼽아보자. 강제이주, 망국유민, 농업이민, 도피이민, 위장이민, 선진국형이민, 연고초청이민, 취업이민, 투자이민, 역이민, 재이민 등. 가슴에 한을 안고 떠난 이에서부터 희망과 도전의 의지를 불태우며 해외로 나선 이까지 이민에 얽힌 사연은 다양하다.

▽우리의 이민사는 한 세기에 이른다. 1900년대 이전 간도 연해주 만주 등지에 강제이주 또는 유민의 성격으로 시작된 게 이민사이다. 1903년 농장인부로 100여명이 하와이에 간 것은 아무튼 서구로 이민간 최초의 케이스이다. 대한민국 정부수립후 1962년 해외이민법 제정과 함께 광원과 간호사가 독일 등 유럽으로 건너갔고, 남미의 농업이민도 활발하게 이뤄졌다.

▽이민이 가장 많았던 시기는 1976년. 4만6533명이나 됐다. 1990년의 2만3000여명이었던 이민자의 수는 이후 1만2000명에서 1만7000명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이민은 국내 여건과 관계가 많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이민자는 군사정부의 통치에 절망해 무작정 농업이민을 떠난 사람도 적지 않았다. 또 사회불안을 느낀 부유층이 재산을 빼돌리기 위해 도피한 경우도 있었다. 1980년대 이후의 이민은 선진국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IMF때는 실업의 돌파구로 이용되기도 했다. 물론 자녀의 교육문제는 언제나 중요한 이민 이유이긴 했다.

▽최근 고학력자의 이민이 급증한다는 보도다. 지난달 21일 한 이민알선회사의 해외이주 설명회에는 평소의 4배나 되는 사람이 몰렸다는 것이다. 그들중 상당수는 끊임없는 대형사고와 의혹사건 등에 신물이 나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한다. 씨랜드 화재로 아들을 잃은 전 하키국가대표의 이민 이유와도 맥이 통한다.이민을 원하는 사람은 가는 게 좋다.그러나 이민의 사유가 그런 것이 되는 사회는 곤란하다.

〈윤득헌 논설위원〉dh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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