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전진우/'상품화된 性'

  • 입력 1999년 10월 24일 19시 26분


김동인(金東仁)의 단편소설 ‘감자’의 여주인공 복녀는 어느날 중국인 왕서방의 채마밭에서 고구마를 훔치다 왕서방에게 들켜 몸을 팔게 된다. 그후 어쩔 수 없이 왕서방과 관계를 계속하던 복녀는 왕서방이 처녀에게 장가를 들자 질투심에 칼을 품고 신방에 뛰어들지만 결국 왕서방 손에 죽고 만다.

▽복녀는 도덕적으로 타락한 것인가. 오늘 이렇게 묻는다면 무슨 케케묵은 얘기냐고 당장 웃음을 살 것이다. 당연하다. 성을 도덕의 잣대로만 재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지났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성은 여전히 이중적 인식의 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겉으로는 근엄하고 속으로는 대단히 ‘성적’이다. 성 담론의 확산을 주창하는 이들은 이처럼 왜곡된성, 위선적인 성을 털어버려야한다고 말한다. 짓눌린 성, 갇힌성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겉다르고 속다른 우리의 성문화를 바로잡는 길이라는 것이다.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어떻게 드러내는 게 옳은 것인가. 막상 이렇게 묻는다면 누구도 쉽게 웃지는 못할 것이다. 식욕과 성욕이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라지만 과연 성이 탐하는 것만으로 충족되는 대상인가. 완고한 도덕주의자가 아니더라도 고개를 저을 것이다.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나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식의 성의식이 갇힌 성을 자유롭게 하고 왜곡된 성을 바로 하는 것일까. 이 또한 의문이다.

▽한 여성 탤런트의 자전적 에세이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가 파문을 빚고 있다. 당사자는 “성과 사랑은 더 이상 억압돼서도 숨겨져서도 안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의 특별한 성체험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 진정 억압된 성을 해방하는 것인지, 아니면 벌거벗은 상업주의와 결부된 또다른 모습의 성은 아닐는지 모를 일이다. ‘섹스의 상품화’ 또한 왜곡된 성의 모습이 아닌가.

〈전진우 논설위원〉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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