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김원일/「4·19 동아사이클」개막에 부쳐

  • 입력 1997년 4월 20일 20시 08분


해외에 나가보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이 나라 땅은 들이 적고 산악으로 이루어져 개발에 따른 이용 측면은 문제점이 많지만 우리나라 땅을 두고 일컫는 금수강산이란 칭송은 해외를 둘러보면 금세 실감이 난다. 문명화 산업화가 드세질수록 자연이 곧 자원이듯 네 절기가 분명한 우리나라의 산 들 바다야말로 신이 빚어낸 낙토이다. ▼정의의 페달 힘차게▼ 4월과 5월 사이는 그중 계절의 여왕이다. 도시의 매연을 피해 어느 곳이든 떠나보라. 온갖 푸나무가 앞다투어 꽃과 잎을 피우고 자애로운 양광 아래 산과 들, 그 금수강산을 에두른 바다는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다. 무르익은 봄 4월 중순. 「4.19기념 동아사이클대회」가 올해로 30회를 맞았다. 오늘 경주에서 출발, 안동 삼척 동해를 거쳐 원주 춘천 가평에 이르는 총 9백22㎞ 구간에 걸쳐 국내 10개팀과 일본 와세다대학팀이 참가한다. 38년 전 4.19학생혁명. 「잔인한 4월」이란 시구대로 많은 젊은 넋이 민주화의 제단에, 4월에 꽃잎 지듯 쓰러졌다. 당시 대학 1년생이었던 나는 그날 종일토록 서울 시내 중심가를 싸돌았다. 가운 입은 서울대 의대생 데모행렬 선두에서 태극기를 흔들던 소복한 여학생의 절규, 선혈이 낭자한 채 쓰러지던 학우의 모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날 버스가 운행되지 않아 한남동 자취방까지 장충단고개를 넘어 걸어가던 밤. 함께 넘던 시민들과 합세하여 외친 부정직한 정권의 퇴진은 아직도 귀에 쟁쟁하게 남아있다. 혁명은 이상(理想)이기에 이기적 현실주의 정치에 패배되었다. 우리세대는 오랜 군사정치를 겪으며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피운 그날의 영광을 가슴에 묻은채 살았다. 작금의 한보사태 청문회에 대처하는 정치인의 인두겁쓴 몰염치를 보자. 더욱 뜨겁게 소생하는 순열한 그날의 순국의 소중함이 가슴에 저며온다. 그 젊음의 기백과 정의감을 기념하여 「민주은륜」대장정이 천년의 고도 경주에서 출발한다. 4.19 그날의 영광을 페달에 실어 좌절의 구렁텅이로 떨어지는 오늘의 정치 경제 현실을 질타하며 다시 일어설 이 민족의 저력을 과시하듯 싱그러운 훈풍을 가르며 북상한다. 짙푸른 동해를 끼고 오르다 진달래 불붙는 태백산맥을 질러 넘는 젊은 건각의 힘찬 레이스야말로 프로야구나 농구의 인기에 못지않는 상징성을 함축하고 있다. ▼북녘까지 달릴 날은…▼ 중고등학교 시절 대구시 교외를 자전거로 신문배달해 본 경험이 있기에 내게 사이클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 웬 차들은 이렇게 많은지. 공해없는 자전거 타기의 국민운동이야말로 절약과 검소를 실천해야 할 오늘의 시점에서 국민적 홍보가 되어야 한다. 「4.19기념 동아사이클대회」가 30년의 경륜을 쌓아올 동안 한국사이클의 발전과 그 세계화의 기여도를 과소평가할 수 없다. 민족의 염원인 통일이 되는 그해부터, 4.19정신을 계승한 이 대회는 부산과 목포에서 신의주와 회령까지 북상하는 꽃길 따라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그 기대는 4.19정신이 사이클의 앞뒤 바퀴처럼 젊음의 이상과 민주주의의 실천이란 양축으로 계승발전되기를 희망하는 풋풋한 꿈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김원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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