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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정치

[최영훈의 법과 사람]걱정스러운 반기문의 ‘訪北 카드’

입력 2016-07-09 03:00업데이트 2016-07-09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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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수석논설위원
그제 과거 정부에서 요직을 맡았고 현 정부의 통일정책에도 관여하는 A와 만났다. 그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9월 방북 추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예상된 일이라 놀랍진 않았다. A는 “미국이 과거 어느 때보다 혹독한 대북 생크션(sanction·제재) 중인데 적기(適期)가 아니다” “미국을 분노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를 담아 만류하는 의견을 반 총장 측에 전했다고 한다.

그런데 반기문 측 반응이 예사롭지 않았다고 한다. 방북의 명분을 구구하게 늘어놓는데 A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김정은과의 회담에 반기문이 얼마나 강하게 집착하는지 감이 왔다고 했다.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의 중대사이자 국제정치의 대형 이벤트인 방북을 너무 쉽게 ‘대선 프로젝트’로 치부하는 데 놀라 A는 그저 혀만 찼다.

요즘 여권 인사들을 만나면 ‘반기문 카드’를 접는 게 낫지 않으냐고 찔러 본다. 지난번 경주의 ‘유엔 비정부기구(NGO) 행사’를 계기로 반기문의 측근과 친박(친박근혜) 핵심이 대선 행보를 조기에 가시화한 것도 ‘패착(敗着)’이었다.

사실 여권으로선 반기문이 정권 재창출의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카드일 수 있다. 그런 ‘와일드카드’를 여권의 조급증, 아니 충청포럼 대표를 맡고 있는 윤상현 의원 같은 친박 핵심의 당권(黨權) 장악욕이 황금 알을 낳을 거위의 배를 그냥 째버린 것이다. ‘김무성 막말’도 그랬지만 윤상현의 정치 IQ는 낮다는 생각이 든다.

커리어(직업외교관) 출신이 많은 반기문의 측근들도 정무적 판단이 둔하다. 유엔 사무총장의 스케줄은 최소한 6개월 전 확정된다. 경주 행사도 친박 핵심과 상의해 미리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을 방문해 한 차례 휘젓고 다니며 대선 출마의 연기를 피워 올려야 세간의 관심을 끌 것이라고 믿었을 법하다. 하지만 국내 정치에 눈독을 들이는 대신 연말까지 유엔 사무총장의 직무에나 충실한 편이 더 낫다.

반 총장의 초조함에 총선 참패로 대권 주자를 망실(亡失)한 보수 여권의 허무함도 가세했다. 무엇보다 당권이라도 차지해야 내년 대선 후보를 꿰차고 당을 장악할 수 있다는 친박 핵심과 청와대 측의 이심전심(以心傳心)도 상승 작용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퇴임 후 정치세력화에 미련이 남은 ‘꼴박(꼴통 친박)’들은 ‘의미 있는 의석의 제1야당’이 돼도 무방하다고 큰소리를 친다. 야당이 돼도 무방하다는 일부 친박의 퇴임 후 구상은 위험천만이다. 박 대통령이 헬기까지 제공한 TK·충청 연대의 집권 프로젝트, 그리고 ‘반의 방북’은 얼마나 깊은 검토를 거친 걸까.

박 대통령이 3개월 전 미국 워싱턴에서 반 총장과 극비리에 회동한 사실이 최근 보도됐다. 반기문의 방북 추진에 나는 걱정부터 앞선다. 지금은 북핵을 포기시키기 위해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를 강화하고 있는 시기다. 그가 북한의 이용거리나 되고 마는 것은 아닌지…. 30대 초반의 북한 지도자와 만나는 ‘위험한 장사’가 이문이 많이 남는다고 여기는 건가. 반기문과 측근들, 그를 대권 주자로 세우려는 친박은 ‘마음을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진리도 모르는 모양이다.

반 총장이 외교안보대통령을 맡고 실세가 책임총리를 꿰차는 ‘집권 프로젝트’도 나온다. 김무성이 재작년에 꺼낸 ‘핀란드식 개헌’의 틀과 비슷하다. 특정인을 염두에 둔 개헌을 각 정파와 국민이 쉽게 승인하지도 않을 것이다. 졸가리 없는 집권여당이 걱정된다.

최영훈 수석논설위원 tao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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