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입법 강화한다더니… 한자리 늘린 5급, 운전기사에게 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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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권력 숨은 실세, 국회 보좌관]허술한 제도 악용하는 의원들

안정곤 보좌관(왼쪽에서 두 번째) 등 새정치민주연합 유인태 의원 보좌진이 22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정부 행정과 예산 편성에 대한 감독권을 가진 입법 전문가인 국회 보좌진은 여의도 정치권의 숨은 실세라고도 불린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안정곤 보좌관(왼쪽에서 두 번째) 등 새정치민주연합 유인태 의원 보좌진이 22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정부 행정과 예산 편성에 대한 감독권을 가진 입법 전문가인 국회 보좌진은 여의도 정치권의 숨은 실세라고도 불린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국회의원의 입법·정책 활동과 대정부 견제 등 국회 기능의 제고를 위해….”

2010년 2월 18대 국회에서 5급 비서관 한 명을 증원하는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내걸었던 이유다. 이로써 의원실에는 △4급 보좌관(2명) △5급 비서관(2명) △6, 7, 9급 비서(각 1명) 등 별정직 공무원과 인턴 2명 등 최대 9명의 보좌진을 둘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부작용이 생겼다. 5년이 지난 현재 입법 취지와 무관한 일을 하는 비서관이 적지 않은 것이다. 의원들이 운전기사 겸 수행비서에게 5급 비서관 직위를 주거나 지역구 관리를 맡기는 경우까지 생겼다. 한 의원은 “운전기사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고생하는 직종이고 나이가 다른 보좌진보다 많아 5급을 주게 됐다”고 해명했다.

이런 배경에는 말 못할 이유가 있다. 한 보좌관은 “보통은 운전기사에게 6, 7급 비서직을 주는 게 일반적”이라며 “4급 보좌관이나 5급 비서관이 수행업무를 맡고 있다면 의원과 특수 관계인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운전기사는 의원의 동선을 그대로 따라다니며 누구를 만나는지 등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있어 그만큼 대접을 해줘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이완구 전 국무총리 등 여러 정치인의 금품수수 의혹은 운전기사나 보좌진의 입을 통해 확인됐다.

올해 2월에는 새정치민주연합 정치혁신실천위원회가 배우자와 4촌 이내의 혈족 및 인척의 보좌진 채용을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된 ‘국회의원 윤리실천규칙안’을 발의했다. 올해 초 일부 의원이 친인척을 보좌진으로 썼다가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A 의원의 아들은 차명으로 4급 보좌관 행세를 하다 물의를 빚었다. 새정치연합 B, C 의원은 각각 자신의 의붓아들과 동생을 5급 비서관으로, D 의원은 외가 친척 2명을 각각 6, 7급으로 채용한 사실이 드러나 망신살을 샀다. A, B, D 의원은 즉각 자녀와 친척을 해임시켰지만 C 의원은 3개월이 지나서야 뒤늦게 ‘동생 비서관’을 교체했다.

새정치연합의 ‘국회의원 윤리실천규칙안’에는 ‘국회가 보좌직원에게 지급할 목적으로 책정한 급여를 다른 목적에 사용해선 안 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등록은 돼 있지만 실체는 없고 급여는 의원이 챙기는 ‘유령 보좌진’의 관행을 지적한 것이다. 국회 보좌진의 채용에 대한 감독기관이 없자 입법기관이 편법을 쓰고 있다는 비판마저 나온다.

전문가들은 보좌진 채용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조관식 국민대 겸임교수(정치학)는 “보좌진을 국회의원 개인이 채용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보좌진들이 의원실 소속이 아닌 사무처 소속으로, 상임위별로 뽑는 ‘보좌진 풀제’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어 “의원이 낙선하더라도 해당 보좌관을 국회가 관리하며 다음에 들어오는 의원과 일할 수 있도록 하면 대행정부 감시능력 등 보좌관들 개개인의 능력이 사장되지 않고 축적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정택 연세대 북한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의원 개개인별로 인터넷에 공채 전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황형준 constant25@donga.com·홍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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