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아들의 병역면제 의혹에 대해 인지수사를 하기 곤란한 만큼 대(對)정부 질문으로 문제를 제기해 달라는 요청을 그쪽(검찰)에서 받았다.”
16대 대선을 4개월 앞둔 2002년 8월 21일 이해찬 당시 민주당 의원이 취재진에게 던진 이 한마디는 들끓고 있던 ‘병풍(兵風) 정국’에 또 한 번 불을 지폈다. 그러나 이 의원은 ‘그쪽’이 누군지에 대해선 “말할 수 없다”며 입을 닫았다.
한나라당은 병풍 수사를 맡고 있던 박영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요청자’로 지목해 검찰에 고발했다. 이 사건을 맡은 한상대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은 2003년 2월과 3월 이 의원에게 참고인 자격으로 세 차례 출석 요청을 했다. 박 부장검사가 “이 의원과 일면식도 없다”며 부인하는 상황에서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선 이 의원의 진술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의원은 출석을 거부했다. 검찰은 이례적으로 법원에 ‘공판 전 증인신문’을 청구했지만 이 의원은 법원의 출석 요청도 거부했다. 결국 진실은 밝혀지지 않은 채 검찰과 정치권 전체의 신뢰도만 큰 상처를 입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이 의원은 국무총리를 지낸 제1야당의 대표가 됐다. 이 의원에게 수차례 출석을 요청했던 형사1부장은 검찰총장에 올랐다.
이 대표는 이달 10일 “검찰이 저축은행 사건으로 구속된 친구에게 내게 돈을 건넸다고 불라며 거짓 진술을 강요했다”고 표적수사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검찰은 “(이 대표가) 실체를 밝히고 근거를 대라”며 강하게 반박했다.
이번에도 진실을 밝혀야 할 책임은 이 대표의 몫이 됐지만 이 대표는 보름이 넘게 침묵을 지키고 있다. 20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검찰총장이 책임지고 말하면 친구에게 진술을 강요한 검사가 누군지 공개하겠다”고만 했을 뿐이다.
법조계에선 “이 대표가 이번에도 의혹의 당사자를 제대로 밝히지 않는다면 ‘묻지 마 폭로’를 일삼는 정치인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박지원 구하기’에 전력을 기울이는 민주당의 논리적 정당성을 스스로 깎아먹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가 제기한 의혹이 사실이라면 이는 검찰 수뇌부 전체가 책임을 져야 할 중대 사안이다. 이 대표가 검찰을 봐줄 의도가 있는 게 아니라면 진실을 밝혀 검찰이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 만약 이 대표가 그럴 만한 진실을 갖고 있지 못하다면 시간을 끌지 말고 자신의 발언에 대해 깨끗이 사과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진실이 어느 쪽에 있든 더는 흐지부지하게 끝나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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