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서고, 지식인의 살롱, 도시의 거실… 시대마다 진화하는 도서관[김대균의 건축의 미래]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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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권 강화 위해 만들어진 도서관… 중세까지 왕-귀족-종교인 전유물
‘토론장’ 살롱, 시민사회 촉발해… 디지털로 ‘정보 장소’ 희석됐지만
지역사회 활성화 큰 역할하면서 도시 연결하는 매개체로 떠올라
현대 사회에서 도서관은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매개체다. ‘모두를 위한 도서관’을 모토로 하는 미국 시애틀중앙도서관이 대표적인 사례다. 다섯 개의 상자를 지그재그로 쌓은 모양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도서관이 걸어온 길, 걸어갈 길
도서관에 가면 가장 먼저 다가오는 감각은 고요함이다. 고요함에 몸이 조금 익숙해지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궁금함을 따라 혹은 우연으로 집어든 책은 잠시이지만 알지 못하는 새로운 세상으로 여행하듯 우리를 안내한다. 요즘 인공지능(AI)은 경험하지 못한 속도로 세상을 전환시키고 있다. 놀랍도록 빠르고 질서 정연하게 정리된 AI의 정보는 우리가 궁금함의 미로에서 헤매는 시간을 허용하지 않는다. 의문을 스스로 헤쳐 나가는 힘은 헛수고라고 생각하는 모양새다.》
김대균 건축가·착착스튜디오 대표 궁금함은 단지 답을 위한 전제조건일까? 그리고 그 사이의 ‘과정’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런 질문에 여러 답이 있겠지만, 책을 읽는 시간이란 경험이 역설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된다.
역사적으로 도서관은 왕권 강화를 위해 처음 세워졌다. 이후 중세까지도 도서관은 왕과 귀족, 종교인들의 전유물이었다. 현재 우리가 익숙한 도서관의 출발점은 17세기 무렵이다. 인쇄술이 발달한 16세기를 거치면서 책값은 크게 떨어졌고, 17세기가 되면서 책 판형의 변화와 함께 책등에 제목이 들어가는 것이 보편화됐다.
이와 함께 신문과 잡지가 등장하고 오스만 제국의 커피하우스 문화가 유럽으로 확산되면서 커피하우스는 정치, 사회, 경제,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토론장이 됐다. 커피하우스와 살롱은 대중의 독서 토론문화를 만들었고, 이런 문화는 근대 시민사회의 촉발제가 됐다. 17세기 카페와 살롱은 ‘생활로 녹아든 도서관’이다. 이후 19세기 영국과 미국에서 ‘모두를 위한 지식’이라는 개념이 확산되면서 공공도서관이 세계적으로 퍼져 나갔고, 이것이 현재 민주주의의 근간이 됐다.
도서관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인 정보 저장 기능은 디지털로 인해 그 의미가 희석됐다. 하지만 같은 내용이라도 말과 글의 전달이 다르듯, 책과 디지털 역시 마찬가지다. 또한 그 시대에 만들어진 책 자체가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는 역사적 유물이다. 요즘 디지털뿐만 아니라 영상, 그림, 소리 등 다양한 매체가 정보와 커뮤니케이션을 담게 되면서 도서관 역시 변화가 생겼다. 음악 도서관, 미디어 도서관처럼 다양한 형식의 전문 도서관들이 생겨나 도서관의 새로운 역할을 개척하고 있다.
도서관의 매우 중요한 또 다른 역할은 지역사회를 단단하게 잇는 것이다. 근대 살롱처럼 도서관에서 이뤄지는 토론과 강의, 실습 등은 주민들의 커뮤니티를 확대하고 견고하게 한다. 여기에 도서관 건축물이 빼어난 경우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어 지역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한다.
현대 도서관에서 지역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대표적인 사례가 네덜란드 건축가 렘 콜하스가 설계한 미국 시애틀 중앙도서관이다. 이 도서관의 목표는 ‘모두를 위한 도서관’이다. 도서관의 외관은 다섯 개의 상자를 지그재그로 쌓은 모양이며, 건물의 입면은 마치 각각의 상자를 투명한 천으로 덮어씌운 것 같은 유리 입면으로 마감돼 있다. 경사지에 있는 이 건물은 1, 2, 3층에 각각 출입구가 있고, 3층의 열람실 이름은 ‘리빙룸’이다. 즉, 도시를 하나의 건물로 보고 이 도서관을 거실로 생각한 것이다. 또한 음악 연습실, 공연 연습실, 작가의 방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은 도시 커뮤니티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독창적이고 상징적인 형상의 시애틀 중앙도서관은 현재 이 도시에서 사랑받는 랜드마크가 됐다.
지난해 12월 개관한 ‘타이중 그린 뮤지엄브러리’. 공원 속에 도서관, 미술관 등 8개 건물이 결합돼 있다. 사진 출처 김대균 건축가지난해 12월 개관한 대만 제2의 도시 타이중에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일본의 건축 스튜디오 SANAA가 설계한 ‘타이중 그린 뮤지엄브러리’가 있다. 이 건물은 2010년 타이중현과 타이중시가 통합되면서 지역의 정체성과 통합의 상징을 위해 기획됐다. 2013년 설계 공모를 시작해 개관까지 12년이 걸렸다.
타이중의 ‘허파’로 불리는 67ha(헥타르) 규모의 중앙공원 내에 있는 도서관의 총건축면적은 약 57만800㎡이다.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8개 건물이 서로 뭉쳐 독특한 외관을 띤다. 각각의 건물은 개방감과 가벼운 공간감을 위해 유리와 금속 그물망, 백색 패널을 사용했다. 건물끼리는 중간중간 곡선의 다리와 계단으로 서로 연결돼 미로와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일부 건물은 필로티 형태로 개방돼 있어 공원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 건물은 도서관과 미술관, 공원이 결합된 독특한 형태다. 이 세 가지 기능이 서로 어떤 관계를 가질 수 있는지 의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도서관’은 그림을 뜻하는 도(圖)와 글자를 뜻하는 서(書)가 결합된 말이다. 또 공원과 도서관은 도시에서 가장 민주적인 공간이다. 그렇기에 그 도시의 정책을 가장 빨리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공원과 도서관을 방문하는 것이다. 공원과 미술관, 도서관이 결합된 이 건물은 앞으로 나아갈 타이중의 방향을 제시하는 셈이다.
갈수록 커지는 양극화와 이로 인한 조급함은 도시를 각박하게 하고 그 안에서 생활하는 도시인을 병들게 한다. 그런 도시에서 책이 있는 공간은 장소와 장소를 부드럽게 연결하고 호흡을 가다듬게 하는 마법이 있다. 도서관은 다양한 방식으로 도시의 새로운 ‘미디엄(medium·매개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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