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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의 영화속 사랑]'거미 여인의 키스' 절망속에 꽃핀 슬픈 동성애

입력 2002-04-08 18:29업데이트 2009-09-18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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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한 독재 국가의 교도소 감방에 두 남자가 갇혀 있다. 루이스(윌리엄 허트)는 미성년자 약취혐의로 구속된 파렴치범이고, 발렌틴(라울 줄리아)은 반체제 운동으로 구속된 양심범이다.

닮은 데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을 만큼 대척적인 이 두 캐릭터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숨겨진 실상을 알고 보면 더욱 절망적이다. 루이스는 발렌틴으로부터 반체제 조직의 비밀을 캐내기 위해 투입된 교도소의 첩자다. 게다가 루이스는 게이인데, 발렌틴은 동성애자들을 혐오한다. 하지만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 사랑이다.

헥토르 바벤코감독의 ‘거미 여인의 키스(Kiss of the Spider-woman, 1985)’는 이 두 재소자들의 사랑 이야기다. 각자의 사랑이야기냐고? 아니다. 이 두 남자는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각자의 마음과 몸을 열고 서로를 절망적으로 사랑한다. 그렇다면 게이영화? 맞다. 내가 아는 한 ‘거미여인의 키스’야말로 가장 대중적 호소력이 강한 게이영화다. 얼마나 가슴 아프고 흥미진진하게 진행되는지 제 아무리 마음의 빗장을 단단히 옭아맨 이성애자들도 어느 순간 무장해제되어 속절없이 빨려들고 만다.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것이 그들이 상상으로 만들어내는 액자영화다. 루이스가 할리우드식 ‘싸구려 멜로영화’를 제멋대로 지어내면, 그것을 듣는 발렌틴 역시 제멋대로 그 장면을 상상하는 것이다. 이 때 가슴 아픈 것은 발렌틴의 상상 속에 나오는 여배우(소니아 브래거)의 존재다. 루이스가 어떤 영화를 이야기해도 발렌틴은 항상 자기 애인의 모습만을 떠올린다. 그 여인은 결국 영화의 엔딩 장면에서 거미여인으로 변신하여 발렌틴에게 키스를 한다. 거미여인의 키스란 곧 죽음이다.

그렇다면 루이스의 거미여인은? 다름 아닌 발렌틴이다. 루이스는 발렌틴과 영혼의 키스를 나눈 대가로 반체제 조직으로부터 어이없는 죽음을 당한다. 잊을 수 없는 것은 죽음의 순간 루이스가 지어보인 희미한 미소다. 그는 행복하게 죽어갔을까? 그런 것 같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쓰레기 취급을 받던 그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을 대등한 인간으로 대해주고 그 영혼까지 사랑해준 사람에게 보내는 행복한 답신이 루이스의 미소였다. 여기서 그 대상이 동성이냐 이성이냐를 따지는 것은 어린애 같은 짓이다. 그렇다.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때론 너무 혹독한 대가를 요구해와서 탈이긴 하지만.

시나리오 작가 simsan8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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