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승재의 영화이야기]영화 잘 안보는 제작자

  • 입력 2002년 1월 17일 17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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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의외로 영화를 잘 안본다는 것은 사실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런 경향이 있다. 다들 영화가 좋아서 어렸을 때부터, 혹은 대학생 시절 영화를 열심히 보다 이 길로 들어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련만 막상 영화가 직업이 되자 극장 출입이 뜸해지는 것이다.

일반론으로 썼지만 특히 나만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루 종일 영화 얘기하고, 영화와 관련된 사람을 만나고, 시나리오와 편집된 작품을 보고. 이런 것이 내 일의 대부분이다. 쉬는 날마저 극장에 가서 영화 볼 생각하면 꼭 일하러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실 난 잘 만든 영화를 보나, 못 만든 영화를 보나 머리가 아프기는 마찬가지다.

잘 만든 영화는 “어떻게 저렇게 잘만들었을까”하고 궁리하느라 머리가 아프다. 못만든 영화는 예전에 내가 저질렀던 실수들이 같이 오버랩돼서 괴롭다.

특히 내 영화가 극장에 걸려 있을 때 다른 영화를 보는 건 아주 질색이다. 그러다보니 최근에 극장에 가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 물론 우리 영화 개봉할 때 극장 앞 카페에서 초조하게 기다린 것을 제외하면. 그래서 요새는 DVD로 영화를 본다. 작년 말에 하나 구입했다. DVD를 보는 것은 극장에 가는 것과 비디오를 보는 것의 중간 형태의 행위인 것 같다.

비디오 보다는 영화를 본다는 느낌이 훨씬 강하고 극장에 가는 것보다는 맘이 편하다. 최신작이 늦게 나온다는 점도 즐겁다. 쇼파에 누워서 군것질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잠수함 영화나 전쟁 영화를 보는 것은 예전에 영화가 ‘진짜’ 재미있어 열심히 보던 때의 편안함을 느끼게 해준다.

비디오만큼 출시작이 많지 않아서 오래 된 영화들을 선택하게 된다는 점도 즐겁고 사운드나 화질도 만족할 만하다.

‘참고할 만한 영화’, ‘성공한 영화’, ‘최근 영화’ 등 이런 기준에 구애받지 않고 내 시간을 즐겁게 채워줄 영화들을 선택하는 게 좋다.

취미가 일이 된 게 10년이 넘었다. 돌아보면 영화에 치이고 싶어서 영화 일을 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보고 좋아했던 그런 영화들을 나도 만들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다. 그런 걸 초심이라고 할 것이다. 초심으로 돌아갈 때가 된 것 같다.

올해에는 회사 일하다 머리가 아프면 극장으로 도망갈 생각이다. 새로 장만했으니 DVD도 봐야 할 것이고. 취미에는 영화감상이라고 적어야 겠다.

‘직업〓영화제작자, 취미〓영화 감상’. 이렇게 말이다.

싸이더스 대표 tcha@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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