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교육]수능-올림피아드 준비에 내신 챙기랴 힘들지만…

  • 입력 2005년 5월 16일 19시 20분


서울과학고에서는 한 학기에 일주일 동안 ‘집중 탐구’을 정해 학생들이 자유 주제를 연구하고 보고서를 낸다. 집중 탐구 기간인 12일 서울과학고 학생들이 실험을 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서울과학고에서는 한 학기에 일주일 동안 ‘집중 탐구’을 정해 학생들이 자유 주제를 연구하고 보고서를 낸다. 집중 탐구 기간인 12일 서울과학고 학생들이 실험을 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지난해 10월 국제천문올림피아드에 출전해 은상을 받은 서울과학고 3학년 강재환(18·서울 중랑구신내동) 군은 조기졸업 자격이 있어 서울대 자연계열에 지원했으나 낙방하고 유학 준비 중이다.

2학기 수시모집에서 조건부 합격했지만 대학수학능력시험 최저학력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강 군은 “국제올림피아드 준비로 수능 준비에 소홀했다”며 “수능은 짧은 시간에 많은 문제를 풀어야하는 등 일정 기간 대비해야 적응이 된다”고 말했다.

국내 과학 영재들은 과학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을 수 있는 교육여건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마나 과학경시대회에서 입상하고 과학고에 진학해도 대입 준비와 내신 관리 때문에 정작 과학적 재능과 적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사장되는 경우가 많다.

부산과학고를 제외하면 과학고 학생들도 일반 학생들과 동일한 전형을 거쳐서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 내신에선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 과학고가 유일한 통로

서울과학고 2학년 최정연(17) 양은 12일 오후 서울 중랑천으로 수질검사를 나갔다.

9∼13일은 일년에 두 번 있는 ‘집중탐구’ 기간. 오전 수업을 마친 뒤 오후에는 각자의 주제로 탐구활동을 한다. 최 양의 주제는 ‘중랑천, 탄천, 도림천의 수질과 오염도에 대한 연구’. 6월 초까지 A4용지 30장 이상의 보고서를 내야 한다.

최 양은 “학교에 온갖 종류의 최첨단 연구 기기가 있다”며 “과학자로서 기본 수양을 쌓을 수 있는 이론 공부와 함께 많은 실험을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과학고의 경우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등 심화과정의 전문교과를 전체 220여 단위 가운데 82단위 이상을 배운다.

서울과학고 이경운 교무부장(물리)은 “1, 2학년의 일반 교과는 대학 1학년 수준이고 올림피아드를 준비하는 1학년은 특기적성교육시간에 대학 2, 3학년 과정을 배운다”고 말했다. 이공계 기피현상에 따라 정부의 지원도 커져 전자현미경 등 실험기기와 실험용생쥐 등 실험 장비도 웬만한 대학보다 낫다.

일부 과학고에는 시도교육청과 과학재단의 지원금으로 대학교수와 함께 연구하면서 배울 수 있는 연구교육과정(R&E)도 있다.

윤혜성(서울과학고 2학년) 군은 “주말과 방학을 이용해 대학에서 특별 교육을 받았다”며 “일반 고교에 갔더라면 경험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대부분 과학고에선 ‘해외탐험학습’으로 경비의 30∼40%만을 부담하고 미국의 유명 대학과 기관을 8∼10일 방문해 과학도로서의 꿈을 기르도록 하고 있다.

○ 입시준비냐, 과학탐구냐

과학고 수업시간에 사용하는 교재는 대학에서나 볼 수 있는 책들이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그러나 이런 우수 학생들도 대학 입시 준비와 연구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우수 학생끼리 공부하기 때문에 대입에서 내신이 불리하기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실제 평일이나 주말을 이용해 학원을 다니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서울과학고 2학년 정모(17) 군은 “수학에 관심이 있고 입상하면 대입에 도움이 돼 올림피아드 출전을 준비 중이지만 학교에서 준비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과학고의 한 관계자는 “2학년 때 절반 이상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으로 진학하는 데다 대입 준비 때문에 실험도구가 좋아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며 “과학고 본연의 취지를 못 살리고 졸업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서울대 등 상위권 대학이 마련하고 있는 과학고 출신자를 위한 특별전형도 활용하기가 쉽지 않다. ‘고급물리’ 등 전문교과를 20단위 이상 듣고 성적이 30% 안에 들 경우 수시모집에 지원할 수 있지만 전문교과가 3학년에 몰려있고 연구에 몰두하다가는 이 조건도 맞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행히 2008학년도 대입부터 과학고 학생이 동일계 대학에 진학할 경우 가산점 등의 혜택을 주기로 했지만 갈증을 풀어주기에는 역부족이다.

일반고의 과학교육 여건은 더 열악하다. 지난해 서울시정보올림피아드 대상을 받은 정현호(서울 광남고 3년) 군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거의 혼자서 공부했다. 이해가 안 돼도 학교에는 물어볼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정 군은 “정보올림피아드를 준비하려면 학교 공부를 거의 못해 성적이 떨어질까 걱정이 심했다”며 “만약 상을 못 탔으면 어땠을까 지금도 아찔하다”고 말했다.

올해 국제과학기술경진대회에 출전했던 서울 창동고 2년 배경윤(17) 군은 “고1 과학시간에는 ‘시간이 없으니 그냥 넘어가자’며 실험은 딱 한 번밖에 안 했다”고 말했다.

○ 일반高와 다른 전형 마련돼야

과학고 교사들은 “미국처럼 과학영재는 일반 학생과 다른 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과학고생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과학고 학생들이 수능에서 낮은 수준의 문제를 틀리지 않기 위해 연습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과학고만의 특별 전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영재교육진흥법에 따라 1991년 설립된 부산과학고만이 일반 고교 출신들과는 전혀 다른 전형으로 포항공대와 KAIST에 입학할 수 있다.

KAIST 전산학과 전상욱(26·박사과정) 씨는 “이공계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 여건이 안 좋아 의대나 한의대에 편입하는 경우가 있다”며 “과학영재가 연구에 매진할 수 있게 대입 등에서 혜택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과학고 전형 및 선발 인원 (2005학년도 모집 요강 기준)
학교특별일반경쟁률전화번호
서울과학고65752.1002-765-2550
한성과학고68724.7002-368-2851
경기과학고34661.80031-259-0419
인천과학고18742.08032-746-8303
의정부과학고34662.67031-870-2764
강원과학고20402.23033-731-7825
충북과학고10362.65043-297-6392
충남과학고13331.89041-855-0137
대전과학고69비공개042-863-4038
경북과학고93750054-248-2856
대구과학고405262033-731-7825
부산과학고14416.04051-606-2171
장영실과학고12682.65051-760-0820
경남과학고9832.59055-759-4002
전남과학고692.12061-331-8767
전북과학고9373.22063-836-7771
광주과학고601.80062-673-7211
제주과학고5182.09064-758-5267
18개475970

출처: 하늘교육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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