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인간의 협동은 '이타적 징벌' 때문

  • 입력 2002년 1월 29일 18시 18분


《군대를 가야할 청년에게 다윈은 무슨 말을 할까. 다윈은 1871년 한 책에서 “전쟁터에서 앞장설 준비가 돼 있는 사람은 후손을 남길 가능성이 적다”고 했다. 그런데 역사 속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기심을 누르고 전쟁터로 나갔다. 또 공공의 이익을 위해 처음 보는 사람과도 기꺼이 협동한다. 왜 인간 사회에서는 다른 생물과 달리 협동과 같은 이타적(利他的) 행동이 발달했을까.》

최근 스위스의 한 연구팀이 인간의 협동이 가능한 것은 이기적인 사람을 징벌하기 때문이라는 연구결과를 ‘네이처’ 최근호에 발표했다. 실험 결과 이기적인 사람을 징벌한다고 해서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심지어 손해임에도 불구하고 징벌이 빈번하게 일어났으며 그 결과 협동이 발생했다는 것.

스위스 취리히대학의 에른스트 페르 박사팀은 240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모의 투자게임을 실시했다. 20프랑씩 분배받은 학생들은 4명씩 한 팀을 이뤄 모두 6번 투자했다. 각자의 투자 액수는 매번 투자가 끝난 뒤에야 알 수 있었다.

이 게임에서 팀원 가운데 단 한 명이라도 만일 1프랑을 투자하면 4명이 모두 0.4프랑씩을 돌려 받게 했다. 4명이 모두 투자하면 돌려 받는 자기 몫이 커지지만, 혼자서만 투자했다가는 손해보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기적인 사람은 투자를 적게 하거나 아예 하지 않게 된다.

그런데 매번 게임이 끝난 뒤 투자에 소극적인 사람을 징벌할 수 있게 하자 결과는 달라졌다. 징벌은 벌점 1점 당 3프랑의 벌금을 부과하는 것. 문제는 징벌하는 사람 역시 1점 당 1프랑을 손해본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4.3%의 학생들이 한 번 이상 징벌을 했다. 그 결과 징벌 규칙이 없을 경우에는 각자의 투자액이 갈수록 낮아졌다가 징벌규칙을 도입하면 다시 투자액이 상승했다. 학생들은 최종적으로 평균 39.7프랑을 가질 수 있었다.

페르 박사는 “모의투자에 참가한 학생들은 생면부지였으며 한번의 투자 뒤에는 팀이 서로 바뀌게 되므로 호혜성 원리나 평판과는 상관이 없었다”고 밝혔다. 징벌을 받은 사람은 다음 투자에서는 투자액을 늘려 같은 팀에 속한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이익을 제공했다. 그러나 이 사람을 징벌한 사람은 이미 같은 팀이 아니므로 이익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연구팀은 ‘이타적 징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연구팀은 다른 사람의 협동에 편승하는 이른바 ‘무임승차자’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손해를 감수하고 기꺼이 징벌을 하도록 했다고 분석했다. 페르 박사는 “대규모 집단에서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낯선 사람들과 협동을 하는 현상에 대한 연구는 ‘이타적 징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제까지 인간의 협동에 대해서는 마치 흡혈박쥐가 피를 빨지 못한 다른 박쥐에게 자신의 피를 주듯이 서로 이익을 주고받는 ‘호혜성 원리’에 따른다고 설명해왔다. 또 눈앞의 물질적 이익이 아니라도 사회적으로 좋은 ‘평판’을 받는 것도 협동의 이유로 제시됐다.

그러나 경기장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응원하고 새치기를 하는 사람을 말리는 것과 같이 언제 다시 보지 못할 사람 사이의 협동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서울대 최재천 교수(생명과학부)는 “이번 연구는 이런 상황에 대한 새로운 메커니즘을 제안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영완 동아사이언스기자 puse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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