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 정재승 소설 ‘눈 먼 시계공’]<122>

  • 입력 2009년 6월 24일 13시 30분


자기 자신에 대한 태도를 바꾸면 위험하다, 소설에서도 인생에서도.

노 원장이 차에서 내렸다.

어린 민선은 정면을 응시한 채 움직이지 않았다. 대화 공간이 차 안으로만 설정된 것이다. 그가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어린 민선은 그를 존재하지 않는 상대로 파악했다.

노 원장은 보안청 직원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그들은 사건 현장까지 2분 안에 도착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2분 만에 완전히 사라질 자신이 없다면, 순순히 법의 심판을 기다리라는 경고이기도 했다. 1분 30초가 지나기도 전에 자동차가 곁에 와서 섰다.

정말 빠르군!

노 원장은 차창으로 어린 민선을 내려다보았다.

바바리코트 차림의 두 사내가 차에서 내렸다. 한쪽은 키가 2미터 50센터미터는 넘어 보였고, 또 한쪽은 길어야 130센티미터에 미치지 못할 듯했다. 꺽다리는 턱을 치켜든 채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거들먹거렸고, 난쟁이는 구부정한 허리 때문에 더 키가 작아보였다.

"노, 윤, 상 원장님이시죠?"

난쟁이가 이름을 한 자 한 자 끊어 물었다.

"그렇소."

짧게 답했다. 이번에는 꺽다리가 눈을 내리 깔며 노 원장을 노려보았다.

"220킬로미터를 넘으셨군요. 잠시 교통청까지 동행해주셔야겠습니다. 원장님의 차는 저희들이 따로 댁까지 옮겨두겠습니다. 자, 어서 오르시지요."

노 원장은 걸음을 떼기 전에 다시 어린 민선을 쳐다보았다. 착각이었을까. 그 순간 갑자기 민선이 고개를 돌렸고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도 반사적으로 오른손을 들다가 멈췄다.

이럴 리가 없다. 이럴 리가 없어!

그리고 꺽다리를 향해 물었다.

"방금 어디라고 하였소? 교통청? 보안청이 아니라 교통청이오? 쿼런틴 게이트 인근 도로는 보안청 관할 아니오?"

"신설되었습니다. 보안청 업무가 과중하여 교통 관련 업무만 따로 관할하게 되었지요."

난쟁이가 재빨리 둘러댔다. 하루에도 평균 10개의 청이 사라지고 11개의 청이 새로 만들어졌다. 어떤 청은 서너 개로 쪼개지기도 하고 어떤 청들은 서로 합쳐 새로운 청을 만들기도 했다.

"신설되었다고? 언제부터 교통청 직원으로 활동을 시작했소?"

"오늘로 사, 사흘쨉니다."

"아, 사흘!"

노 원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두 걸음 물러섰다.

매일매일 새로운 청이 없어지고 생겨나다 보니, 같은 이름끼리 부딪히는 경우도 가끔 생겼다. 특별시연합법에는 먼저 생긴 청이 뒤에 생긴 청에 의해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여기엔 이름이나 역할 등등이 포함된다. 소멸된 청의 이름을 다시 사용할 수는 있지만, 극빈자 보호 지원을 주요 업무로 하는 교통청(交痛廳)은 미약하게나마 아직까지 활동 중이었다. 이로 인해 교통청(交通廳) 신설은 계속 늦춰졌다. 특별시민 중에는 당연히 교통청이 교통 업무를 총괄한다고 여기고 연락을 취했다가 기부 안내를 받기도 했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 지난 세기 음란물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음악청(淫樂廳)이 있다.

노원장이 재빨리 차에 올라타며 외쳤다.

"자동 출발!"

"아, 아빠! 반가와요. 산책이라도 다녀오셨어요?"

어린 민선의 인사를 받지도 않고, 노 원장은 운전석에 앉았다. 그러나 차는 단 1미터도 가지 못한 채 앞바퀴가 들렸다. 꺽다리가 차 앞에 엎드려 물구나무를 서면서 두 발로 자동차를 밀어올린 것이다. 말꼬리가 깃대처럼 곧게 솟았다.

"아빠! 조심해요. 안전운전 가족행……. 아악!"

어린 민선이 비명을 질렀다. 앞 유리가 깨진 것이다. 유리를 후려친 것은 난쟁이의 엉덩이에 붙은 원숭이 꼬리였다.

노 원장이 겨우 차문을 여는 순간, 난쟁이의 손이 차 안으로 들어와서 그의 멱살을 움켜쥐고 당겼다. 한 번 공중제비를 돈 노 원장의 몸이 정수리부터 바닥에 닿았다. 꺽다리가 뇌까렸다.

"잔머리를 굴린다고 순순히 보내드릴 줄 아셨어? 안 되지. 우리도 돈 받고 하는 일인데, 당신을 놓쳤다간 우리 목숨이 간당간당해."

꺽다리가 노 원장을 안아 일으켜 어깨에 걸쳤다. 겨우 정신이 돌아온 노 원장이 머리를 떨며 들었다. 어린 민선이 손을 흔들었다. 착각이었을까.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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