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이광표 기자의 문화재 이야기]‘일제 쌀 수탈’ 아픔 깃든 군산 임피역을 아시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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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답사, 제대로 즐기는 법
③근대의 흔적 따라가기

프랑스 파리의 유명한 오르세 미술관은 원래 기차역이었습니다.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 갤러리는 발전소였지요. 일본 삿포로의 생활 문화 공간 삿포로팩토리는 맥주 공장이었답니다. 근대기 산업유산을 모두 문화공간으로 활용한 사례입니다. 최근 들어 국내에서도 근대 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습니다.

군산 지역 수난의 흔적이 남아 있는 임피역.
군산 지역 수난의 흔적이 남아 있는 임피역.
○ 군산, 근대의 상흔

전북 군산은 1899년 개항을 했습니다. 1899년이라고 하면 우리의 국력이 약해져 서구 열강과 일제의 침탈을 받을 때였지요. 이런 상황에서 군산에는 개항과 함께 일제 자본이 밀려 들어왔고, 일제는 군산을 호남지역에서 생산된 곡물을 수탈하는 근거지로 삼았습니다.

▽수탈과 ‘탁류’의 흔적

소설가 채만식은 1937년 ‘탁류(濁流)’라는 소설을 썼습니다. 1930년대 일제의 수탈을 적나라하게 고발한 소설이지요. 그 소설의 무대가 바로 군산입니다. 군산 도심엔 일제강점기 경제수탈과 문화침략을 보여주는 흔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옛 군산세관 본관, 조선은행 군산지점, 나가사키 18은행 군산지점, 조선미곡회사 쌀 창고, 군산 내항 부교(浮橋), 신흥동 일본인 가옥(히로쓰 가옥),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 사택 건물,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東國寺) 등.

▽근대건축의 보고

1922년 건축된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 건물은 서울(당시 경성)을 제외하곤 가장 웅장했던 건물로 꼽혔습니다. 지금은 군산근대건축관으로 활용되고 있어요. 히로쓰 가옥은 국내 일본식 주택 가운데 그 형태와 특징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건물입니다. 근대건축물들은 대부분 박물관 갤러리 공연장 체험공간 등으로 활용되고 있어요.

군산근대역사박물관에선 일제강점기 거리와 상가 모습 등을 만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국립민속박물관과 함께 기획한 6·25전쟁 특별전 ‘1950 군산, 6월의 꽃’을 전시 중입니다.

▽군산의 장미는 무슨 뜻일까

근대건축물이 몰려 있는 곳의 지명은 장미동입니다. 웬 장미꽃이냐고요? 그 장미가 아니고, 쌀(米·미)을 저장했다는 뜻의 장미동(藏米洞)입니다. 일제가 우리의 쌀을 수탈했음을 보여주는 지명인 겁니다.

군산엔 이 밖에도 미장동(米場洞), 미성동(米星洞), 미원동(米原洞), 미룡동(米龍洞)처럼 쌀 미(米)자가 들어가는 지명이 많습니다.

▽더 둘러보기

군산 외곽에 있는 임피역에도 꼭 들러야 합니다. 일제가 쌀을 수탈하기 위해 건설한 군산선의 간이역이었습니다. 단정하고 아담한 임피역은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시간이 정지된 듯 조용하고 적막하지요. 열차를 활용해 만들어놓은 박물관도 볼만합니다.

철길에서 1m도 채 떨어지지 않은 채 붙어 있는 건물에서 사람들이 생활하는 곳. 경암동 철길마을도 들러보세요.

옛 한일은행 강경지점.
옛 한일은행 강경지점.
○ 또 다른 근대의 흔적

▽분주했던 포구의 흔적, 강경

충남 논산시 강경읍은 근대기까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포구였어요. 전국 해산물 집결지로 이름을 날렸지요. 평양, 대구와 함께 3대 시장으로 꼽히며 1960년대까지 많은 사람들이 몰렸던 곳입니다. 그 영화는 모두 사라졌지만 지금도 젓갈 파는 가게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강경엔 군산 못지않게 근대건축이 많이 남아 있답니다. 1925년 건축되어 젓갈 창고로 쓰이다 강경역사문화안내소로 활용되고 있는 강경노동조합, 1920년대 충남 호남권에서 가장 큰 한약방이었던 남일당 한약방, 요정에서 다방 중국집 등으로 간판을 바꿔온 금성다방 건물, 국내 유일의 한옥식 개신교 교회당인 북옥감리교회, 1905년 건축된 옛 강경지점(현 강경근대역사관), 강경공립상업학교 관사, 중앙초등학교 강당 등. 이 밖에도 도심 곳곳에 근대건축물이 산재해 있습니다. 강경의 거리를 거닐다 보면 100여 년 전 역사 속으로 빨려들어 가는 듯합니다.

벌교의 보성여관.
벌교의 보성여관.
▽‘태백산맥’의 흔적, 벌교

전남 보성군 벌교읍은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의 주요 무대입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근대기 공간을 벌교에서 만날 수 있어요. 가장 먼저 찾아야 할 곳이 보성여관입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남도여관이 바로 이곳입니다. 일본식 건물인 보성여관은 현재 카페와 숙소로 활용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보성여관 주변을 둘러보면 일제강점기와 그 후 벌교가 얼마나 번창했었는지를 실감할 수 있을 겁니다.

이 밖에 부산, 대구, 인천, 전남 목포 등 근대기를 경험했던 도시, 특히 수난을 경험했던 도시에선 예외 없이 근대의 흔적을 만날 수 있습니다. 부산 국제시장 근처에 있는 부산근대역사관, 대구 근대거리에 있는 대구근대역사관, 목포근대역사관에 가면 그 지역 수난의 근대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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