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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제6회 박경리문학상 최종 후보자들]<6·끝>中 출신 美소설가 하진

이남호 문학평론가·고려대 교수
입력 2016-09-08 03:00업데이트 2016-09-0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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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비극성과 폭력성, 간결한 문체와 풍자로 담아내 《중국계 미국인 작가 하진(60)은 스무 살이 돼서야 영어를 배웠다. 그랬던 그가 20여 년 만에 미국의 주요 문학상을 수상하는 작가가 됐다. 하진은 삶의 비극성과 폭력성을 간결한 묘사와 희극적 풍자에 녹여내는 데 뛰어난 역량을 보여 온 소설가로 평가받는다.

뉴요커는 “하진의 소설을 읽는 것은 사랑에 빠지는 것과 흡사하다”고 평했다. 그의 작품 세계를 이남호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이 소개한다.》
 
미국 사진작가 제리 바우어(Jerry Bauer)가 촬영한 하진. 그가 구사하는 간결한 문장은 서사에 충실한 그의 소설과 맞아떨어지면서 읽는 재미를 더한다. 시공사 제공
하진(본명 진쉐페이·金雪飛)은 1958년 중국에서 태어났고, 미국에서 영미문학을 전공했다. 미국 유학 중에 톈안먼(天安門) 사태를 보고 미국에 계속 머물게 됐다고 한다. 하진(Ha Jin)은 필명 진하(金哈)의 영어식 표기다. 그는 1990년대부터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수많은 작품을 발표해 현재 가장 주목받는 미국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진 소설의 주요 무대와 소재는 문화혁명 시절 또는 그 이후의 경직된 중국 사회다. 중국을 떠나 해외에서 활동하는 여러 중국 출신 작가들이 그러하듯이, 그의 소설의 근원에도 문화혁명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단편집 ‘붉은 깃발 아래서’는 문화혁명 시절의 어두운 중국을 다룬다. 비정상적인 권력과 제도의 횡포 속에서 평범한 인간들이 체험하는 비굴함과 모멸과 낙담과 분노가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하진은 이 심각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가벼움과 유머를 잃지 않는다. 그의 소설은 가벼움과 유머를 통해 현실의 무거움을 매우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그의 작품 속 인물과 사건들은 편하고 가볍고 재미있게 그려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그의 소설이 가혹한 현실과 풍운의 삶을 진지하게 다루고 있음을 저절로 알게 된다. 이것은 작가의 놀라운 현실 투시력과 고통스러운 삶에 대한 넉넉한 내공을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진 소설은 가볍지만, 하진은 무겁고 진지한 작가다.

그의 소설이 지닌 보편적 설득력도 이와 관련이 있다. 그는 문화혁명을 다룰 때에도 그것을 보통 세상의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로 다룬다. 즉, 문화혁명 자체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기보다는 어느 시대의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삶의 우여곡절과 희로애락을 이야기해 준다. 그 이야기 속에서 인물들은 제각기 결함이 있는 채로 비상식적 세상에서 상식적 가치를 구하고자 좌충우돌한다. 여기서 유머가 생기지만, 유머는 하진 소설의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그 목적은 세상이 어떤 곳이며,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문학의 오랜 본령이며 보편적 설득력의 근거가 된다. 이런 점에서 하진 소설은 요즘의 문학에서 찾기 어려운 정통성을 확보하고 있다.

한편 하진 소설의 가벼움과 유머는 그의 간결한 문체와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하진의 문체는 간결하고 명료하다. 외국어인 영어로 작품을 쓰다 보니 상황이나 캐릭터를 최대한 간결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고, 그것이 그의 소설 문체를 단순 간결하게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간결함은 필요한 것을 다 보여주지 못한다는 단점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꼭 필요한 것만 보여준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진의 그것은 물론 후자다. 본질을 훼손하지 않고 상황과 의미를 단순화시킬 수 있다는 점은 리얼리즘 작가로서 큰 장점이 된다.

‘니하오 미스터빈’은 하진의 대표작이 되기에는 다소 미흡하지만, 이런 하진 소설의 특성과 장점을 두루 보여준다. 하급 직원인 샤오빈이 부당한 아파트 배정과 관련하여 간부들과 좌충우돌 싸우는 이야기다. 그 싸움은 코믹하고, 한심하고, 엉뚱하게 전개된다. 겉보기에는 사실성이 결여된 코미디 같지만, 세상이 어떤 곳이며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사실적 통찰이 뚜렷한 작품이다. 문학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가혹함과 우리 삶의 고달픔을 비춰주는 거울과 같은 것이라면, ‘니하오…’도 바로 그런 작품이다. 그리고 나아가 하진의 모든 소설이 그러한 의미에서 문화혁명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곳의 우리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진 소설은 예부터 좋은 문학이 오래 그래왔듯, 세상이 어떤 곳이며 삶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흥미롭고 설득력 있게 이야기해 준다.

●하진은…

중국에서 나고 자란 하진은 모국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29세에 미국으로 유학했다. 이후 미국에
거주하면서 영어로 작품을 썼다. 그는 1996년 펜헤밍웨이 문학상을 수상한 이래 플래너리 오코너 단편문학상, 전미도서상,
펜포크너상 등을 휩쓸었다. 하진의 문장은 간결하지만 그 단순함이 오히려 아름답게, 시적으로 읽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국내에는
‘자유로운 삶’ ‘멋진 추락’ ‘전쟁 쓰레기’ ‘광인’ ‘카우보이 치킨’ ‘호랑이 싸움꾼은 찾기 힘들어’ 등이 출간됐다.

이남호 문학평론가·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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