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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8월 9일 17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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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남불의 휴양도시 ‘칸’에서 열렸던 국제 영화제, 그리고 요즈음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작은 마을 ‘라로크 당테롱’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제 피아노 음악 페스티벌. 2002년 두 남불 축제의 공통점을 찾아본다면 그건 바로 ‘피아니스트’가 아닐까.
올해로 22회를 맞는 라로크 음악축제는 7, 8 월 여름 두 달 동안 전 세계에서 찾아온 피아니스트들이 마을 곳곳을 누비며 음악팬들에게 ‘한 여름밤의 꿈’을 선사하는 ‘피아니스트들의 축제’이다. 반갑게도, 올 여름축제에는 한국의 젊은 피아니스트, 임동혁 군도 당당히 88개의 흑백 건반 위에서 ‘현란한 손놀림(?)’을 펼쳐 보인다. 굳이 사족을 달 필요가 없는 세계적인 영화 축제인 ‘칸 영화제’. 임권택 감독의 ‘감독상’ 수상으로 유난히 한국의 영화팬들을 설레게 했던 ‘55회의 칸’에서 최고 영예의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영화는 거장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였다. 이 영화 속의 쇼팽의 선율을 기억하시는 분들이라면, 위 두 축제의 주인공인 ‘피아니스트’들을 서로 공명(共鳴)시켜 더욱 진한 축제의 감흥을 맛볼 수도 있으리라.
영화 ‘피아니스트’는 폴란스키감독과 동향인 ‘유태계 폴란드인’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즈필만(Wladyslaw Szpilman)의 수기를 그 원작으로 하고 있다. 젊은 즈필만(28세)은 1939년 독일군의 바르샤바 침공이 시작되던 날, ‘라디오 폴란드’ 국립방송국에서 쇼팽의 야상곡을 녹음하고 있었던 지극히 평범한 음악가였다. 그 뒤 6년 동안이나 바르샤바의 유태인 ‘게토’ 속에서 숨어살아야 했던 그는 자신의 ‘삶’과 ‘생존’의 전말을 개인적인 일기로 남겨놓았다.
전쟁이 끝난 뒤 46년에 출판된 즈필만의 수기는 그의 별명을 따라 ‘바르샤바의 로빈슨 크루소’라 불리었다. 그러나 분명치 않은 이유로 폴란드의 공산정권 하에서 이 책은 곧바로 금서의 목록에 올랐고, 이후 60 년대 수 차례의 재출판 계획이 무산되면서, 즈필만의 이야기는 망각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다행히 그의 이야기는 반세기가 지난 후, 프랑스의 로베르 라퐁 출판사(2001년 1월)에서 영어본을 토대로 번역되어 다시 햇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2000년 7월, 즈필만의 사망으로 이 책은 그의 유고작이 되고 말았지만.
일반적인 유태인의 전쟁고발 문학과 달리, 즈필만의 이야기에는 원망이나 증오의 넋두리도, 복수의 열망이나 고발의 증언도 담겨 있지 않다고 한다. 라멘토(비탄), 트레몰로나, 비브라토(떨림)의 흔적을 찾을 수 없기에 그만큼 더, 프랑스 독자들의 내면 깊숙이 충격과 전율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닐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에 힘입어서인가? 즈필만의 ‘피아니스트’는 올 여름 내내 베스트셀러의 상위권 대열에서 벗어날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임준서 프랑스 LADL 자연어처리연구소 연구위원
joonseo@worldonline.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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