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 노트]고미석/주부를 위하여

  • 입력 1998년 10월 30일 19시 30분


“오늘은 뭘 해먹지.”

주부들이 매일 하는 고민. L씨는 그런 걱정을 안한다. 23일 두부 반모, 25일 호박 반개…. 이런 식으로 냉장고에 보관한 음식과 날짜를 기록한 공책이 있기 때문. 노트만 펼치면 금세 ‘오늘의 요리’가 떠오른다. 음식낭비도 적어졌다. 그는 또 마당의 사과나무가 보이는, 집에서 제일 전망좋은 2층 창가에 낡은 재봉틀을 놓았다. 일하면서 행복할 수 있도록,그래서 가족과 이웃에게 더 많은 기쁨을 나눠줄 수 있도록 자신을 위해 만든 자리다.

주부 C씨는 오전10시부터 낮12시까지를 ‘나만의 시간’으로 정했다. 정해진 시간 안에 부지런히 청소 빨래 등을 마무리짓고 작은 책상에 앉는다. TV드라마를 보거나 이웃 주부와 수다떠는 것은 피한다. 책도 읽고 평소 내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를 글로 옮겨온 시간이 쌓여 이제 그는 훌륭한 동화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열심히 사는 주부를 만날 때마다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다. 출세와 상관없이 가족을 위해 땀흘리는 남편이 모두 장해 보이듯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주부들의 소박한 삶 그대로가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만일 가정이 의미를 잃는다면 의미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는 말이 있다. 요즘 같은 IMF시대에는 더욱 실감나는 얘기다. 하지만 ‘가정’의 가치를 지키는 일은 주부가 단순히 가사노동을 능숙히 해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또 주부만이 아니라 가족의 협조와 이해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11월1일은 한 주부단체가 주부를 당당한 직업인으로 선언하고 전문성을 높이자는 취지로 제정한 ‘주부의 날’. 이날 하루만이라도 온 가족이 주부를 행복하게 하는 작은 일을 한가지씩 해보면 어떨까. 주부란 바로 가족의 영혼을 어루만져주는 사람임을 기억하고 보답하는 뜻으로….

고미석<생활부>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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