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어제오늘]부천 원미동,소시민삶그린 소설무대로

  • 입력 1997년 5월 20일 08시 54분


梁貴子(양귀자)씨의 11편 연작소설 「원미동 사람들」에는 이런 귀절이 나온다. 「멀리서 보면 눈썹같은 모양을 지닌 원미산(遠眉山) 아래 있다 해서 원미동이라 이름이 붙여진 것은 부천이 시가 된 다음의 일이고 동네가 꾸며지기 이전에는 몇몇 부락뿐으로 이 일대는 조마루 혹은 조종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원미동 사람들, 67쪽) 「원미동 사람들」은 80년대 본격적인 산업사회로 진입하기 시작한 경기 부천시 원미구 원미동 주민들의 삶을 그렸다. 양씨는 이곳에 살며 원미동 사람들을 모델로 작품을 썼다. 실제로 원미동에는 지하철 1호선에 시달리면서 출퇴근하는 은혜 아빠, 도시변두리의 마지막 농사꾼인 강노인, 골목을 떠도는 원미동 시인 등 소시민들이 뒤엉켜 살고 있다. 강노인이 그토록 지키려 했던 조마루는 현재 원미1동 원미주공아파트가 있는 지역. 이곳은 창녕 조씨, 청주 한씨, 전주 이씨 등이 집성촌을 형성했던 마을로 특히 조씨가 많아 조마루라 불렸다. 崔鉉洙(최현수·41)부천역사연구소장은 『원미산 서쪽과 중앙 봉우리에 있던 노송나무와 박달나무에 도당할머니 할아버지 신이 모셔져 있어 조마루 사람들이 매년 봄가을 도당제를 지냈다』며 『70년대 초반에 나무를 베어버려 2백년동안 이어져 내려온 도당제가 단절됐다』고 말했다. 원미동은 부천의 중심로인 중앙로가 뚫리고 부천시청과 원미구청이 들어서는 번화가로 변했다. 〈부천〓이헌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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