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노년이 행복하다]<4>노인에 맞추는 근로환경

  • 입력 2005년 1월 13일 18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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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일본 나라(奈良) 현에 본사를 둔 건설회사 야마구치(山口)는 ‘베스트 믹스’라는 새로운 근무시스템을 도입했다.

숙련된 기술을 가진 고령 근로자와 젊은 근로자를 한 조로 편성해 함께 일하도록 한 것. 고도의 기술과 풍부한 경험이 필요한 부분은 고령자가, 체력과 민첩성을 요구하는 부분은 젊은 근로자가 각각 맡도록 했다.

서로의 장점을 살려 효율성을 높이는 한편 고령자의 기술과 경험을 젊은이에게 전수하도록 한 것.

▽고령 근로자에 대한 배려=미국 자동차회사 ‘인터내셔널 트럭 앤드 엔진’은 바로 선 자세로 자동차를 조립할 수 있는 새로운 설비를 설치했다. 노인들이 자동차 밑으로 들어가 작업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한 것.

핀란드 국립직업건강연구소의 J 일마리넨 교수는 이 같은 노력을 ‘연령 관리(Age Management)’라고 정의한다. 각각의 연령층이 가진 장점을 극대화해 모든 인적 자원을 활용하는 것.

그는 “고령 근로자의 일할 수 있는 능력이나 생산성은 연령 자체보다는 어떻게 일을 조직하는가에 달려 있다”며 “문제는 연령에 맞게 업무를 조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이가 들면서 신체적 능력은 떨어지지만 경험이나 기술 등 정신적 역량은 오히려 증대된다는 것. 그는 “현재의 업무가 젊은층에 맞게 디자인돼 있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여겨진다”고 지적했다.

실제 이 연구소에서 1981년부터 45∼57세 6257명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11년 동안 연구한 결과 60%의 근로자가 예전과 다름없는 수준의 근무 역량을 보였으며 10%는 오히려 더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소는 “중요한 것은 나이가 들면서 업무 능력이 저하되는 30%를 배려하는 것”이라며 “실험 결과 연령 관리를 실시한 그룹은 몇 년 뒤에도 70%가 업무 능력을 유지했으나 관리를 안 한 그룹은 52%만이 업무 능력을 유지했다”고 밝혔다.

핀란드를 비롯한 각국 기업들은 이 같은 연구 결과에 따라 1990년대 후반부터 ‘연령 관리’를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자물쇠 제작으로 유명한 핀란드 기업 애블로이(ABLOY)가 대표적인 사례. 이 회사는 2001년 ‘에이지 마스터스’ 제도를 도입해 3년 만에 근로자 퇴직 연령을 59세에서 62.5세로 높이고 병으로 인한 결근율을 대폭 낮추는 데 성공했다.

고령 근로자들에게 건강증진 계획을 세우도록 하고 ‘시니어 피트니스클럽’을 설치해 적절한 운동을 시키는 한편 58세 이상 근로자에게는 온천여행 등 특별 휴가를 제공한 것. 업무 역할 역시 연령에 맞게 다시 디자인했다.

회사 측은 “젊은 근로자들이 이들의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도 시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도 노력=일본은 기업뿐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도 고령자 근무 환경 개선을 위해 세심한 관심을 쏟고 있다.

일본 후생성에서 고령자 고용정책 실무를 담당하는 기관인 제드(JEED)는 1987년부터 ‘고령자가 일하기에 편한 근무 환경 조성’을 목표로 매년 기업을 대상으로 한 콘테스트를 개최해 우수 기업을 표창해 왔다.

또 일본 국제표준화기구(ISO) 차원에서 ‘가이드 71’이라는 개선 프로그램을 마련해 공장에서 도구를 놓는 위치와 전등의 밝기 조절, 노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말의 사용 등을 권장하고 있다.

제드 기획개발부 책임자 이노우에 후미코 씨는 “예전에는 육체적 한계를 보충하기 위한 작업 환경 개선에 집중했지만 이제는 근무시간의 탄력적 운용, 노인의 기술 활용 등 다양한 측면에서의 개선 방안도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사회부>

전지원 기자 podragon@donga.com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김재영 기자 jaykim@donga.com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일마리넨 교수 ‘연령관리’ 제안▼

“고령화 시대에는 누가 건강하고 유능한 인재를 보유하는가가 성공의 관건입니다. 앞으로는 ‘노화의 비밀(Secret of Ageing)’을 이해하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것입니다.”

올해로 25년째 노화(Ageing)가 ‘일’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는 핀란드 국립직업건강연구소 J 일마리넨 교수(사진)의 말이다.

그는 1981년 6257명의 40, 50대 근로자를 대상으로 노화 연구를 시작, 11년 동안 이들의 변화를 관찰해 일하는 능력을 수치화한 업무능력척도(Work Ability Index)를 개발했다. 또 이를 바탕으로 고령화에 따른 업무 능력 감퇴를 늦출 수 있는 ‘연령 관리’ 개념을 제안했다.

일마리넨 교수는 “각 연령층이 다른 재능과 특성을 갖는다는 것을 알고 이를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며 “현재처럼 30대를 기준으로 디자인된 업무 방식은 고령화 사회에 부적합하다”고 지적했다.

“한 예로 일흔 살이 되기 전까지 배우는 능력은 연령과 무관합니다. 하지만 연령층마다 학습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연령층에 맞게 새로 디자인하지 않으면 ‘배우기엔 너무 늙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죠.” 그는 “젊은 시절의 근무 환경이 50, 60대 근무 역량은 물론 은퇴 이후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한국도 본격적인 고령화 사회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미리 근무 환경 개선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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