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64년 파리 오페라극장 천장화 공개

  • 입력 2008년 9월 23일 03시 00분


백발의 화가는 거대한 화폭 위, 작은 나무의자에 앉았다. 흰색 작업복에는 녹색계통의 물감이 어지럽게 묻어 있었다.

그는 팔레트에서 환하게 빛나는 노란색을 붓끝에 콕콕 찍었다. 정성 어린 붓질 사이로 미소 띤 무희들이 춤을 추고 붉게 물든 나뭇잎 주위로 새가 날아올랐다.

1964년 9월 23일 프랑스 파리 오페라극장은 ‘색채의 마술사’ 마르크 샤갈(1887∼1985)의 천장화를 공개했다.

샤갈의 회상. ‘앙드레 말로(프랑스 문화부 초대 장관)가 파리 오페라극장의 새 천장화를 그려 달라고 제안했다. 나는 고민에 빠졌고, 감동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의심을 품었다. 밤이나 낮이나 오페라극장에 대해 생각했다. 이론이나 방법 같은 것에 구애받지 않고 새처럼 자유롭게 노래하고 싶었다.’

가스통 르루의 소설 ‘오페라의 유령’의 실제 무대이기도 한 파리 오페라극장과 샤갈의 인연은 195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른 모리스 라벨의 발레 ‘다프니스와 클로에’의 무대장치와 의상 작업을 맡은 것이다.

말로는 이 공연에서 샤갈의 작품을 접한 뒤 극장의 천장화를 의뢰했다. 대작이 공개된 날도 ‘다프니스와 클로에’가 한창 공연 중일 때였다.

샤갈은 560m² 면적의 원형 천장을 푸른색, 붉은색, 노란색 등 색깔별로 구역을 나눴다. 화가는 “윗부분에선 배우와 음악가의 창작활동을 아름다운 꿈속의 거울에 비친 것처럼 묘사하고 아랫부분에서는 관객의 의상이 일렁이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14명의 작곡가와 이들이 작곡한 발레, 오페라를 그렸다. 바그너, 드뷔시, 스트라빈스키, 차이콥스키 등 오페라와 발레음악의 위대한 작곡가들에 대한 존경심을 담았다. 일생 동안 음악과 춤, 연극, 시를 사랑했던 샤갈에게는 마땅한 일이었을 것이다.

천장화가 공개된 뒤 “너무 유치하다”는 소위 전문가들의 힐난이 잇따랐지만 일반 대중의 환호 속에 곧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오페라극장의 전반적인 스타일과 샤갈의 작품이 조화롭지 못하다는 지적은 여전했다.

작업을 마치고 “프랑스가 아니었다면 색채도, 자유도 없었을 것이다”라고 한 샤갈은 본래 러시아 태생의 유대인. 그는 20대 초반 파리로 나와 그림공부를 하며 큐비즘(입체주의)을 접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엔 미국에서 지내다 1947년 다시 파리로 돌아와 햇살 좋은 남프랑스에서 생의 끝 날까지 머물렀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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