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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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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2월 13일 태어난 당신은 ‘미국의 대표적 공학자’로 성장할 잠재력을 타고났더군요. 아버지는 성공한 엔지니어였고, 어머니도 유명한 측량기사였더군요.
공학도라면 당신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드물죠. 타임지가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으로 꼽은 인물이니까요.
1947년 벨연구소에서 일하던 당신은 동료 과학자인 존 바딘, 월터 브래튼과 함께 트랜지스터를 발명했습니다.
그 발명의 역사적 의미는 진공관을 이용한 최초의 전자계산기 에니악을 보니까 짐작할 수 있더군요. 에니악은 1만9000개의 진공관이 필요했고 무게만 30t이었죠. 차지하는 면적만 170m²에 달했고요. 51평 아파트 크기였던 전자계산기를 지금처럼 손바닥 위에 올려놓게 해 준 것이 트랜지스터라니….
그런데도 당시 미국 언론은 이 위대한 발명을 단신 기사로 처리했다고 하니, 시대를 너무 앞서간 당신을 탓해야 하나요? 아니면 언론의 한계를 안타까워해야 하나요?
1955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쇼클리반도체연구소를 설립해 ‘실리콘밸리’의 기초를 닦고, 1956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당신은 분명 위대한 과학자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훌륭한 리더는 아니더군요. 특히 자신의 능력만 믿었지 아랫사람을 신뢰하지 않았어요. 회사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다고 범인 색출을 위해 부하 직원에게 거짓말탐지기를 들이대는 지도자를 누가 따를 수 있겠어요.
말년에는 ‘과학기술은 인류를 위한 것’이란 평범한 진리조차 망각한 것처럼 보였어요. 당신의 지독한 엘리트주의는 인종차별주의로 발전했고 “지능지수(IQ)가 100 이하인 사람들은 스스로 불임시술을 받아야 한다”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어요.
1982년에는 ‘열성 인간 추방, 우성 인간 양성’이란 단 하나의 공약을 앞세워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어요. ‘8위 낙선’이란 결과가 보여 주듯 세상은 당신에게 야유했죠.
쇼클리 씨.
그 뛰어난 머리에 따뜻한 마음을 갖기가 그렇게 힘드셨나요.
사람을 사랑하며 인류의 행복을 생각하며 살았다면, 당신의 인생도 더 위대하고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요.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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