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공동체 살리기]<7>'금사모'의 특별한 錦山사랑

입력 2003-06-04 19:50수정 2009-10-1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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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출신이 아니면서 금산의 자연에 반해 모인 사람들. 서울 강남구 타워펠리스 회의실에 모인 김만수 아산양행 기획실장, 전용수 인하대 교수(회장), 양웅섭 아이디어파크 대표, 이언오 삼성경제연구소 상무.(왼쪽부터)-이훈구기자
‘금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금사모)’에는 금산 사람이 없다. 회원 모두가 비(非) 금산출신이다. 회원들은 “실향민이나 다름없는 도시인이기 때문에 금산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 더욱 소중히 아끼고 사랑한다”고 했다. 이들로 인해 충남 금산군은 독특한 변신을 해나가고 있다. 앞만 바라보는 성장보다는 고향의 아름다움과 공동체의 따듯함을 지켜내는 제3의 대안을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왜 금산인가?

“나는 그곳의 자연에 ‘눈이 삐었다’. 설악산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우리 금수강산, 우리 시골의 모습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삼성경제연구소 이언오 상무)

“옛날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시던 곳과 같다. 도시인은 거기서 자신의 본성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아산양행 김만수 기획실장)

“현대인은 저도 모르게 남을 찌르는 ‘가시’를 갖고 있고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금산에 가면 그런 가시를 모두 벗어던지게 된다.”(인하대 경영학부 전용수 교수)

금사모는 ‘밖’에서 금산을 지키는 든든한 외지인들의 모임이다. 식목일에는 느티나무나 무궁화나무 등을 심어 자연 경관을 가꾸는 데 일조하고, 인삼축제 등 지역 축제에는 자발적으로 참여해 흥을 돋운다. 보육시설인 ‘향림원’ 등 지역복지시설에 돈을 기부하며 지역공동체를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역할은 금산의 보존과 발전을 위한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추진하는 데 힘을 보탠다는 점이다.

#최고의 자연환경

금사모 이언오 상무가 금산 땅을 처음 밟은 것은 1998년 12월, 금산의 김행기(金行基) 군수가 삼성경제연구소에 지역개발에 대한 조언을 구한 것이 계기였다. 1999년 3월부터 업무를 위해 주말마다 금산을 방문하기 시작한 이 상무는 그해 4월 중순경 금산에 흠뻑 빠져들었다.

“서울로 올라오는 차 속에서 다른 지역 산들이 너무 멋이 없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조경을 전공하는 연구원에게 조경학에서 말하는 아름다움의 조건이 무엇인지 물었는데, 놀랍게도 그 조건들이 금산의 자연 풍경과 모두 일치했다.”

그 후 이 상무는 금산이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주변 사람들을 그곳에 데려가며 금산을 홍보하는 ‘전도사’가 되었다. 많을 때는 관광버스 두 대를 빌릴 정도였다. 그러다 1999년 6월초 금강에 놓인 다리 위에서 지인들과 술잔을 기울이다 ‘금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결성했다.

#금사모는 비밀결사?

금사모에는 회칙, 회비, 가입 절차가 없다. 회장이라고 알려진 전용수(全鎔秀) 교수 역시 한사코 자신은 회장이 아니라고 말한다. 회원이 몇 명인지조차 아무도 모르며 400∼500명 정도라는 추측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금사모는 비밀결사”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요즘도 거의 주말마다 금산을 찾는 이 상무는 “금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금사모’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단 한 가지 조건은 금산 출신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 지역 활동을 펼치는 데 이권이나 정치적 의도가 개입될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금사모 회원으로는 경기문화예술회관 홍사종 관장, 서울대 미대 김병종 교수, 태평양화학 이우영 사장, 신경정신과 전문의 이시형 박사 등이 있다. 각자의 전문 영역과 인적 네트워크를 살려 금산 발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금산의 미래는 금사모와 함께

금사모는 순수한 ‘외지인’의 모임이지만 지역 발전을 위해서는 금산군청과의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금사모의 노력 덕분에 금산은 ‘농촌 경제의 새로운 모델’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올해 2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외지인들이 어떻게 지역을 도울 수 있는지’를 연구하기 위해 금사모를 ‘조사’해갔다.

금사모가 추구하는 금산의 모습은 금산군의 표어 ‘생명의 고향, 미래의 땅’에 응축돼 있다. 주민들이 원하는 경제 발전과 금사모가 바라는 ‘옛 모습 지키기’가 타협점을 찾자는 취지. 이들은 금산이 자연환경, 농업, 전통문화를 잘 보존하면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금사모는 지속적으로 지역의 문화, 경제 발전을 위한 전략과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있다. 2000년 7월 ‘노영심의 피아노 선율을 따라가는 숲 속 여행’이라는 작은 음악회를 열어 주민들에게 애향심을 심어주기도 했다. 금사모가 주도해 이곳 폐교에 문을 연 농업벤처대학은 전국적으로 ‘신농업’의 불을 지폈고, 지금은 전국 농업인들이 거쳐 가는 필수 코스가 되었다.

#외지인과 주민들의 하모니

금사모나 군청 모두 금산을 요란하게 홍보하지 않고 있다. 사람이 너무 많이 찾으면 자연 환경이 훼손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4월 한 달간 열린 ‘비단고을 산꽃축제’도 ‘아는 사람만 조용히 왔다 가라’는 식으로 적당한 선에서 홍보했다.

금사모의 ‘은근과 끈기’는 한 번의 큰 씀씀이로 뽐내는 것보다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얻는 데 훨씬 효과적이었다. 주민들은 처음에 ‘군수에 출마하려는 것 아니냐’고 오해하기도 했으나 이제는 금사모를 고맙게 받아들이고 있다. 금산 농악보존회 김창기(金昶基) 회장은 “금사모는 생색내지 않기 때문에 주민들도 처음에 이들의 존재를 몰랐다”며 “외지인들이 금산을 아껴주고 힘 써주니 든든하다”고 말했다.

이 상무는 “금산의 특징인 ‘인간 생활 터전으로서의 자연’을 계속 지켜 나가면서 주민들이 잘살 수 있다면 다른 지역에도 모범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는 교육 문제를 해결해 인구 유출을 막음으로써 금산의 장기적인 발전을 도모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조경복기자 kathycho@donga.com

●금산군은…

금산(錦山)은 ‘그리운 고향’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400여개의 분지를 갖고 있고 3000여개의 크고 작은 산이 비단 폭처럼 둘러싸고 있다.

가운데에는 금강(錦江)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강가의 풍경은 화려하진 않지만,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는 그 무엇인가를 갖고 있다. 면적은 576km²로 서울(605km²)보다 약간 작다. 인구는 6만여명. 1000만명이 넘는 서울보다 100배 이상 더 여유롭게 사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도 지역 축제 때면 500여명이 한데 어울려 농악을 하는 광경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전통문화가 잘 보존돼 있다. 자동차를 타고 마을에 들어서면 ‘이장(里長)이 막걸리 통을 들고 반겨주는’ 훈훈한 인심도 살아있다.

충남이지만 전라, 경상도와도 가까워 폐쇄적인 지방색이나 지역감정은 없다. 외지인을 비교적 쉽게 받아들이는 것도 금산의 매력이다.

금산을 대표하는 것은 인삼이다. 전국 인삼 생산량의 15∼17%를 차지하는 금산 인삼은 ‘백제삼’으로 뛰어난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금산 인삼시장에서 거래되는 인삼은 연간 3106억원 정도로 전국 인삼 유통량의 80%를 차지한다. 수많은 산에서 나는 약초도 금산의 명물인데 약초시장에서는 하루 66t, 시가 6억원 이상의 약초가 거래되고 있다. KBS 심야토론의 진행자인 길종섭씨, 농촌드라마 전원일기에 출연한 탤런트 박순천씨, 개그맨 이창명씨 등이 이곳 출신이다.

조경복기자 kathycho@donga.com

▼벤처농업대학 세운 민승규 박사 ▼

금산에는 전국적으로 소문난 ‘명문대학’이 하나 있다. 한국벤처농업대학(학장 정문술·鄭文述 전 미래산업 대표)이 그것이다. ‘벤처농업인’을 양성하기 위해 세워진 이 학교는 도쿄대 농업경제학과 박사 출신으로, 금사모 회원인 삼성경제연구소 민승규(閔勝奎) 박사가 3년 전 만든 ‘한국벤처농업포럼’이 모태였다.

“그동안 한국 농업은 정부주도형, 개발성장 모델이 주를 이루었죠.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농업에도 노동 토지 등 물적 요소보다는 아이디어와 기술, 창의력, 디지털경제, 고객만족 등을 도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민 박사는 신농업의 산실이 될 벤처농업대학을 금산군 제원면의 한 폐교에 마련했다. 월 1회 대학교수, 마케팅 전문가, 법률가 등 강사를 초빙해 농업전반의 마케팅전략과 경영기법에 관한 강의와 토론회를 벌이고 있다. 전국에서 몰려든 수강생들은 20대부터 60대까지. 전라도와 경상도 출신이 각각 30%, 나머지는 충청 경기 강원도에서 등교한다.

“경영전략 마케팅 사업계획서제출법 등이 과목입니다. 토요일 오후 3시부터 오전 1시까지, 일요일은 오전 9시부터 낮 12시까지 강의가 연달아 있어 ‘사교클럽식 공부’와는 거리가 멀죠.”

1년제인 이곳에서 1기생은 87명이 등록해 21명, 2기생은 91명 중 41명만이 졸업장을 받았다. 최근 3기 모집에는 100명 이상이 응모해 갈수록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정부지원은 철저히 배제한다. 강의료와 숙식비 학교운영비는 모두 학생들의 부담. 민 박사는 “순수한 교육기관이 일단 농민단체가 되면 단체장 사무국장 직원 사무실 등이 필요해지고 쓸데없이 돈이 낭비됩니다. 지금처럼 자급적 형태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라고 말했다.

‘벤처신화’의 주인공인 정문술 학장도 요즘 이 대학 발전에 고심하고 있다. 최근 김성훈, 김동태 전 농림부장관 등을 만나 대학발전 문제를 논의했다. “농업을 살리는 아이디어라면 누구와도 대화하겠다”는 게 정 학장의 결의다.

벤처농업대학(www.vaf21.com)은 ‘스타농민’의 산실이 되고 있다. 금산 인삼을 활용한 ‘인삼 초콜릿’, 조선의 궁중술을 상품화한 ‘가야곡왕주’, 경남 김해의 ‘5도씨 이온쌀’ 등이 대표적이다. 폐교에서 싹튼 신농업이 점차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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